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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ug 29. 2023

나의 부엌으로

                               

부모님이 살아계시던 시절엔 늘 엄마 음식을 얻어다 먹었다. 근처에 사셨으므로 오후 출근 전에 들러 점심을 먹고, 저녁 반찬을 얻어오는 식이었다. 계절마다 바뀌는 엄마표 김치도 늘 다양하게 먹었다. 철딱서니 없는 딸은 고마운 것을 고마운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이 병상에서 생의 끝자락을 향해가는 동안, 그제야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가 알게 됐다. 동시에 뒤늦은 반성을 했다. 막상 부모님이 아프시자 뭐 하나 제대로 만들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엄마의 음식이 식탁에 오르던 시절은 이제 추억 속에만 있다. 엄마의 시원하고 깔끔한 김치, 내가 떡을 좋아한다고 넉넉히 넣어 끓여 주시던 칼칼한 김치찌개. 가지를 함께 넣어 매콤하게 볶은 돼지고기, 그리고 자글자글 구워낸 고등어 한 도막. 음식은 그저 먹는 것만이 아니라 추억이며, 그리움이며, 한 사람의 생이기도 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우리 가족은 죽으면 화장해야 해. 안 그러면 썩지 않아서 천년 후 어느 날 미라로 발견될지도 몰라.”

웃으며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가족의 식생활 대부분을 차지하는 레토르트와 간편식을 이대로 먹어도 되는 걸까 싶긴 하다. 바쁠 때는 바쁘다는 것이 이유였다. 더는 출근하지 않는 삶을 사는 지금은 솜씨가 없다는 이유를 대며 식탁엔 늘 사 온 음식과 이미 조리되어 봉지만 뜯으면 되는 음식들이 오른다.    

이런 우리의 식생활에 조금이나마 변화가 생긴 것은 지난봄부터의 일이다. 재미 삼아 응모한 동네 주민센터의 텃밭 모집에 덜컥 당첨되었다. 그 덕에 4월부터 11월 말까지 나는 한시적인 텃밭 농부가 되었다. 텃밭이라고는 가꿔본 경험이 없었으므로 인터넷을 뒤지고, 이웃 텃밭 어르신들께 물어가며 이것저것 심었다. 


모종을 심어두고는 저게 살기나 하려나, 몽땅 죽어버리면 어쩌지 노심초사하는 맘과 다르게 작물들은 잘 자라주었다. 늦봄부터 상추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이거 완전 무농약이야. 진짜 물만 줬는데 어떻게 이렇게 자랐지?”

처음엔 신기해서 파릇파릇한 상추 몇 개를 따고도 흥분했다. 기특한 내 새끼를 보는 기분으로 상추며, 가지, 고추 등이 저마다 키를 키우는 텃밭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식탁엔 상추와 깻잎이 자주 올랐다. 쌈을 해 먹고, 샐러드를 해 먹었다. 가끔 지인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내심 상추 봉지를 건넬 때마다 뿌듯하고 신이 난 얼치기 초보 농부였다.      


봄을 지나 여름이 오는 동안 상추는 미친 듯 자랐다. 여러 장 뜯어도 며칠 후면 또다시 쑥쑥 새잎이 돋아나 우리 가족의 식탁엔 마치 김치처럼 상추가 빠지지 않았다. 

“우리 언제까지 상추 먹어?”

처음엔 신기해서 좋아하던 가족들은 서서히 상추를 지겨워하면서 시큰둥하게 먹었다. 하지만 상추는 무한대로 뜯어먹을 수 있는 작물은 아니었으므로 상추 줄기가 내 손가락 두세 배만큼 굵어질 즈음엔 이제 보내줘야 하는 때란 걸 누가 얘기해주지 않아도 알았다. 상추를 뽑아내고 나자 장마의 시작이었다. 긴 비는 여러 날 지루하게 내렸다. 식탁에 상추가 오르지 않은 지는 꽤 되었고, 이제 장마는 지나갔으니 다시 상추를 심어볼까 싶어 텃밭을 둘러봤다.     


상추만큼 자주 딸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가지도, 고추도 여러 번 따다 먹었다. 하지만 이제 장마를 지나고 나자 그들도 전 같지 않다. 아직 이렇게 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 서 있는데, 작물들은 어느덧 가을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깻잎 역시 전보다 크기가 작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조금만 더 커질 때까지 기다릴까 싶어 며칠 놔두면 여지없이 벌레가 먼저 알고 먹었다. 적당히 벌레와 나누어 먹는다 생각하는 것이 맘이 편했다.

조금씩 벌레가 입을 댄 깻잎들을 따다가 문득 생각한다. 과연 무농약 채소는 어디까지 무농약일까. 우리 가족은 특별히 유기농이나 무농약 채소를 찾아 먹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손바닥만 한 텃밭을 가꿔보니 과연 농약 없이, 제초제 없이 얼마나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벌레가 와서 먼저 먹었고, 뽑고 돌아서면 잡초는 다시 났다.      


화분도 제대로 못 키우던 사람이 손바닥만 한 텃밭 농부로 몇 달을 살아보니 느낀 것은 농약뿐이 아니었다. 농사라는 것은 단순히 ‘일’이라는 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었다. 적당한 날을 택해 꼼꼼히 모종을 심고, 자주 때맞춰 물을 주어야 했다. 너무 더워도 걱정이었고, 너무 비가 많이 와도 걱정이었다. 심고 가꾸는 일엔 다 저마다의 알맞은 때가 있는 법이었는데, 그때를 제대로 아는 일은 어려웠다.

그래도 물만 주었는데 무성해지고, 열매가 열리는 채소를 보는 일은 경이로웠다. 슈퍼에만 가도 널린 것이 가지며, 고추며, 상추였지만 그들이 밭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보는 일이었기 때문 아닐까. 슈퍼의 채소들이 사진이라면, 내 텃밭의 작물들은 동영상이었다.     


기세 좋던 푸르름을 살짝 지난 가지잎을 여기저기 뒤적거리다 보니 숨은 듯 열려있는 보라색 가지 하나가 있었다.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하나를 땄다. 이제 가지가 끝물인듯하니 어쩌면 마지막 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늘 돼지고기를 볶을 때 가지를 함께 넣었다. 처음엔 가지라면 질겁하고 싫어했는데, 엄마가 돼지고기볶음에 함께 넣은 가지는 꽤 맛이 있어서 때로 가지가 없으면 서운하기도 했다. 

보라색으로 반짝이는 가지 하나와 깻잎 몇 장을 따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한다. 그리고 혼잣말을 해본다.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저녁엔 가지와 깻잎을 함께 넣고 돼지고기를 볶아봐야겠다. 엄마처럼 맛있게 할 자신은 없지만,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는 인터넷이 알려주겠지. 가지와 깻잎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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