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보스톤 크림 도넛
주기적으로 던킨 도너츠의 도넛이 간절하게 생각날 때가 있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맛있는 도넛들이 넘쳐나지만 말이다.
예전에 ‘던킨 도너츠를 파헤쳐라 ‘와 같은 다큐에서 던킨 도너츠의 반죽은 다 똑같아서 어떤 도넛을 먹던지 그 맛은 비슷하다고 폭로(?)했다.
10대, 20대 때 던킨 도너츠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그 사실은 내게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도넛의 반죽이 다 같던, 안 같던 맛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너무 그 사실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저번주부터 갑자기 던킨 도너츠가 먹고 싶었다. 던킨 도너츠에서 기특하게도 두바이 도넛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어서인지 더 생각이 났다.
어디 나가기 귀찮은 명절 막바지, 우리 가족은 배달앱을 켜고 먹고 싶은 도넛을 한 명씩 고르기 시작했다.
첫째는 항상 클래식한 링도넛을 고른다. 둘째는 이번에도 역시 딸기 크림이 듬뿍 들어간 딸기 도넛이다. 그나마 우리 집에서 제일 도전 정신이 있는 남편은 의외로 오늘은 스테디셀러인 보스톤 크림 도넛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나도 똑같이 초코 코팅이 먹음직스러운 보스톤 크림 도넛을 골랐다.
던킨 매장에 들어가 도넛을 고를 때, 자세히 보면 나의 스탠스가 정말 흥미롭다. 매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번엔 무조건 새로 나온 도넛을 먹어보리라 다짐한다. 아니면 모양이 특이하거나 안 먹어본 맛을 도전해 보자고 나 스스로와 약속을 하고 비장하게 입장한다.
그러고는 결국 고르는 것은 역시 초코 코팅이 두꺼운 크림 보스톤 도넛이다. 눈은 화려하고 새로운 모양의 도넛에게 가있지만 집게를 쥔 손은 오늘도 안전하게 보스톤이다.
10대-20대 때는 내가 창의적이고 다채로우며 변화에 유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30대가 되어 다시 들여다보면 나는 굉장히 느리고 신중하며 변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학교를 다니고 사회 초년생일 땐, 세상 속 변화에 겁 없이 뛰어드는 모습을 가진 사람이 멋졌다. 여러 가지 번뜩이는 생각과 그 안에서 다양한 모양으로 변신하는 사람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이길, 그런 어른이 되길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웬걸, 나는 수십 가지 화려한 도넛들 앞에서 보스톤 크림 도넛밖에 모르는 순애보다.
창의적이고 다채롭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괜찮다. 그래도 나는 지독히도 일관되게 한 곳만 깊게 들여다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도 저런 성격처럼 장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도넛에 대한 나의 도전은 계속될 것 같다. 도전하는 마음만은 언제나 기대와 설렘을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