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지나도 여전히, 아니 오히려 새롭게 낯선 그 이름 '나'
내 인생 중 가장 큰 변곡점이자 가장 설렜던 이벤트는, 바로 '스무 살'이었다. 고3 당시에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보면, 10대와 다르게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자유가 좋아 보였고, 무엇보다 대외활동 등을 통해서 학교밖의 사람들을 만나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도,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새로운 것들을 만드는 것이 너무 즐거워 보였다.
수능이 끝나고 곧 스물을 앞두고 있던 나에게 주변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했던 공통적인 조언들은 모두, '나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난데, 날 뭐 어떻게 알아가라는 거지?' 어릴 적에는 그런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 때는 정해진 교복을 입고 크게 변동사항이 많지 않은 학급 반 아이들과 지내면서, 서로 공통적인 목표인 수능을 위한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큰 감정고조를 많이 겪지 않아도 되었고 삶에 변주랄 것이 딱히 없었던 것이다. (물론 10대를 보내던 그 시절에는 여러 방황들과 여러 힘든 점도 또 있기야 했을 수 있다, 지금 서른을 넘은 이 시점에서 딱히 생각이 나지 않을 뿐..)
스무 살을 기점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도 확실히 넓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들이 좀더 깊어지고 확장되면서 여러 감정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조금조금씩 알아갔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20대는, 10대 때보다 취미가 확장되어 어떤 것들을 했을 때 나의 컨디션이 회복이 되는지를 알아서 지치더라도 <회복탄력성>이 좋았고, 특히나 꿈을 향해 좇아가는 것을 즐기며 <꿈에 대한 나의 태도, 가치관>에 대한 것을 더 많이 알아간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10대, 20대를 지나 서른이 되어 보니, 다시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리셋'이 된 기분이다. 20대 때 좋아하던 것들이 여전히 나를 지탱해주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온전히 나의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는 지반이 다소 무뎌졌으며 20대 때 오롯이 홀로 잘 꾸역꾸역 버텨보려 했던 나의 꼿꼿함은 어느새 생명력을 다했는지 서른이 된 이후부터는 누군가의 어깨에 조금이나마 기대기를 원했고 꿈을 좇기보다는 함께 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조금씩 더 체감을 하게 되었다.
서른 살이 된 지금에서야 누군가와 함께 해야하는 2인3각 경기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진 시점에, 방법을 제대로 잘 알지 못해 아쉬운 경기만 내내 계속되었다. 이제까지 나는 홀로 걸어오고 홀로 뛰어왔기에 원하는 꿈에는 꽤나 가까이 다가온 것 같으면서도, 옆에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 채 시간을 보내왔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함께하는 기술을 익히지 못한 채 그래서 서투른 면모들만 갈수록 눈에 더 잘 보였다. 정말 많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내가 어떤 모습인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무엇이 두렵고 불안한지 등을 알지 못한 채, 상대에게 명확히 나의 진심을 꺼내지 못하고 상처주는 말로 그저 밀어내기에만 급급했다. 상대방이 나에게 올바른 정답을 내어주기만을 기다리며 그렇게 수동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만의 경기가 아닌 우리둘이 함께 하는 것임에도. 그런 사실을 망각한 채, 선택이 두려우니 상대에게 칼자루를 계속 쥐게 하며 안 좋은 방향으로만 계속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
그래서 요즘은, 요즘의 내가 낯설다. 혼자보다 함께 하였을 때 이토록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몰랐고, 누군가와 함께 하고픈 마음이 절실함에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몰랐고,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사람인 줄도 몰랐다. 예전의 그 겁없고 용맹하던 젊은 시절은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때는 꿈을 향한 도전들을 하면서 무모함이랄 게 있었는데. 지금은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는 때엔 더없이 겁이 많아지는 나를 보며 조금은 안아주고 싶으면서도, 또 조금은 한발짝이라도 조금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지, 나를 좀더 알아가야지, 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