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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릿느릿 아줌마와 나무늘보

<표지사진: Alan James Robinson 'The Raven'>


“......그래서 우리 작은 이모부가 그렇게 박대를 당하는 건데요, 어쩌겠어요. 다 저가 쌓은 업보 아니겠어요? 그러게 누가 첩을 두래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첩이 웬 말이에요? 그런데 더 웃긴 건 뭔지 아세요? 글쎄 그 첩년이, 아이쿠, 죄송해요. 제가 웬만해서는 욕을 안 하는데, 도저히 그 사람한테는 고운 말이 안 나온다니까요? 그 첩년이 우리 엄마한테 와서 뭐라는지 아세요? 사정이 이러니 집구할 때까지만 좀 얹혀살면 안 되겠냐는 거예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우리 엄마가 과부인걸 알고 아주 그냥 얕 본거죠! 내가 그 년을 그냥 아작을 내든가 해야지! 한참이 지난 얘긴데도 분이 삭혀지지를 않네요! 저희 엄마가 뭐랬겠어요? 당연히 안 된다고 했죠! 아니 지 사정이 어떻든지 간에 남에 남편 도둑질해간 것도 모자라서 염치는 밥 말아먹었데요?! 그렇지 않아요? 어딜 기어 들어온데요? 저가 아주 본처 자리를 꿰차고 앉으려는 심산이었던 거죠! 진짜로 아직까지 그 집에 있다니까요? 불쌍한 우리 작은 이모! 저라면 차라리 이혼을 하겠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니까요? 작은 이모부가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는 재산 무슨 사업한다고 다 말아먹어, 계집질하고 다니느라고 탕진해, 그게 뭐가 좋다고 아직까지 이혼도 안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에 그 첩년이 본가 들어와 살았을 때 우리 집에서 작은 이모를 받아줬다니까요? 제가 어렸을 때 그래서 사촌동생들을 돌봐주게 된 거예요. 집에서 쫓겨난 작은 이모가 아이들이랑 갈 데가 없으니까 남편 없이 사는 우리 엄마네 얹혀살게 된 거죠. 아주 우리 집이 봉이야 봉!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말이에요, 외할머니예요! 아니 이모부가 뭐가 좋다고 아직까지도 이모부가 찾아오면 밥상을 내준데요? 그 첩년까지 달고 오는 이모부가 뭐가 좋다고 말이에요! 아이고, 속 터져! 꼴에 죽을죄를 지은 줄은 아는지 첩년은 집안에 들이지도 못하고 차 안에서 기다리게 하고는 저 혼자 들어와 고개만 푹 숙이다 가는데, 아주 그냥 면상을 차버리고 싶은 걸 꾹 참는다니까, 제가! 작은 이모부 하나 때문에 지금 몇 집이 고생하는데요! 사업한다고 돈 빌려준 우리 큰 이모네 망했지! 작은 이모는 그 첩년 때문에 하루 만에 길바닥에 나앉게 됐지, 저희 집은 엄마가 과부인게 무슨 죄래요? 왜 작은 이모네 팔자까지 떠안고 살아야 하냐구요! 제가 작은 이모부만 생각하면요, 어린 시절을 몽땅 손해 본 것 같아 아주 속이 뒤집어져요! 그런데 언니 저한테 뭐 물어보셨었죠? 아! 맞다! 어머님 부가세 많이 나왔다고 속상하다고 하셨댔죠? 저희 큰 이모도 장사를 하는데 말이에요, 아차! 제가 큰 이모 장사한다고 얘기했던가요? 쩌기 수원, 옛날에 유명했던 유원지가 하나 있는데, 원천 유원지요, 참! 지금은 광교 신도시가 들어와서 원천 호수 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어쨌든 거기 근처에서 장어집을 하셨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다 계엄이다 관세다 뭐다 해서 매출이 반에 반 토막이 나셨는데, 지난 분기 부가세가 한참 잘 됐을 때랑 비교해서 그렇게 큰 차이가 안 난다고 이번에 결국 장사를 접으셨어요. 경제가 진짜 어떻게 되려는지! 소상공인들이 망하면 결국 대한민국 근간도 망한다구요! 서민을 살리는 정치를 해야지 민주당이든 국민당이든 하여튼 정권만 잡으면 저 배 불리는 데만 혈안이 돼서 아주 그냥 염병! 그런 정치인들 때문에 우리 큰 이모처럼 평생 장사만 하면서 성실하게 살아온 서민들이 설 곳을 잃게 되는 거잖아요. 요즘 중장년층 자살률이 얼마나 높은지 아시죠? 그게 다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되 나서 그런 거 아니겠어요? 아무튼 저희 큰 이모가 진짜 한 성깔하시는 분인데 말이에요, 작은 이모부 같은 사기꾼한테 돈 빌려줘서 한 번 망했는데도 장사는 끝까지 손에서 놓질 않으셨거든요. 겨우 겨우 살려낸 생업이었는데 말이에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희 환자 중에서도 이번에 장사 접게 돼서 그 스트레스로 공황장애 치료받는 분, 계시잖아요. 아휴, 저는 그 분 사정은 딱한데 진짜 아니다 싶어요. 아니, 저가 공황이고 스트레스면 스트레스지 왜 병원까지 와서 그 난동을 피우냐구요. 저만 힘들데요? 우리 병원 오는 환자들 다 뭔가 문제가 있고, 힘들어서 오는 건데 왜 자기만 생각 하냐구요. 아주 그냥 자기 혼자 세상 짐 다 떠안았어! 그렇지 않아요?”


그녀는 정말로 속이 답답하다는 듯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휴게실 테이블 옆에 서 있는 최과장을 쳐다보았다. 최 과장은 그녀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상담실 데스크 직원으로 그녀와는 입사 동기였다. 입사 동기여서인지 둘은 종종 함께 퇴근을 하거나 오늘처럼 그녀가 환자들의 약을 제조하느라 점심이 늦는 날에는 일부러 그녀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병원 휴게실 냉장고 안에 직원들을 위해 구비해놓은 샌드위치로 함께 점심을 때우기도 했다. 최과장이 들고 있던 커피 잔을 테이블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진 과장, 내가 진 과장 아껴서 하는 말인데, 오해하지 말고 들어. 알았지? 그게, 진 과장 요새 말이 좀 많아진 것 같은데, 진 과장도 알고 있어? 병원 식구들이 뒤에서 다 혀를 내두를 정도니까. 혹시 무슨 힘든 일 있어? 자기 말은 똑 부러지게 했어도 입에 모터 단 것처럼 말이 많았던 건 아니잖아.”

“제가요? 아니요! 대체 누가 그래요? 누가 뒤에서 제 얘기를 하는데요? 제가 말을 하면 얼마나 한다고요?! 웃기지도 않아! 아니! 할 말 있으면 앞에서 하지 왜 뒤에서 하고 난리래요? 저가 무슨 정치인이라도 된데요? 나 참 말이 안 나와서! 지들은 얼마나 고상하다고! 아니 언니, 누가 그러는데요? 대체 누가요?!”

“아니, 그게, 지금도 그렇잖아. 나는 우리 어머니 부가세 너무 많이 나와서 속상하다고 꺼낸 말인데, 진 과장 얘기만 30분 째 듣고 있으니까. 내가 진 과장 얘기 30분 째 들어서 싫다는 게 아니라, 대화라는 게 서로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하는데 죄다 진 과장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걱정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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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고 싶어서도 내려놓지 못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되돌아보니 그저 좋아 썼습니다. 가장 나다울 수 있는 행위이기에 글을 씁니다. 그 종착이 타인을 위한 글쓰기이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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