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을 앞두고 돌이켜 보니 난 나름 괜찮았던 사람이었다.
괜찮은 학교를 나오고
괜찮아 보이는 키와 이목구비에
괜찮게 여겨질 독서라는 취미를 갖고
괜찮음 위에 범상치 않음을 품은 패션에
괜찮다고 바꿔 쓸 수 있는 적당한 남편을 만나고
괜찮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돼 완벽하다로 형용을 하고 말았던 두 아이를 키우고
괜찮음을 넘어 멋진 혹은 자신에게 동물에게 지구에게 철두철미한 비건이었다.
괜찮지 않은 형편없는 사람으로 변하기까지 정확히 1년이 걸렸다.
서서히 변했다고 지난 1년을 수식하려다 소름 끼쳤다.
지난 1년은 표지판을 못 본 채 마주한, 이제 끝나겠지, 이제 빛이 보이겠지 싶었던 조바심 가득한, 끼어들어 박차고 나갈 수 없는 고속도로 위 긴 터널이었다.
사춘기와 남자친구 문제로 멀어진 첫째의 미국행 의지에 반대 한 번 못 한 채 유학 보내고 공황이 찾아왔다.
의사 선생님은 빈 둥지 증후군처럼 갱년기와 유대감을 느꼈던 딸의 상실이 주는 불안에서 원인을 찾았다.
약을 먹을수록 나아져야 하는데
아이와 연락이 안 될 때, 아이걱정 말고 다른 생각을 해보자 찾은 사람이 많은 마트, 극장에서, 숨 쉴 공기는 코와 입을 비껴나가 대기로 흩어져 날 패닉으로 만들었다.
은둔의 시작이자 먹을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형편없는 내 삶이 펼쳐졌다.
우스개소리로 코끼리와 하마도 풀만 먹어도 뚱뚱하다 하지만, 억울하게도 7년 차 비건인 난 풀만 먹는 채로 10 킬로그램이 불어났다.
아 맞다. 나를 갖고 노는 갱년기!
폐경증상으로 홍조에 불면증에 골다공증 초기에 고기를 다시 먹어야겠네라며 풀만먹고도 살찌는 내 몸에 기름기를 들이부었다.
이제 난 1년 사이 15 킬로그램 이상 증량된 상태로 무릎을 펴고 구부릴 때 통증을 넘어 풀리지 않는 가위 같은 경험을 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지난 번 글에 썼던 것처럼 둘째와의 몸싸움으로 두부외상까지 안고 있어 무거운 몸에 고인 핏멍울까지 더해져 심한 두통과 싸우며 집이라는 은신처 안에 내 방이라는 밀실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생활 중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비밀이다.
내가 나름 괜찮았던 걸 아는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이렇게 볼 품 없어졌다는 것이, 더구나 작은 방문 노크소리에도 공황에 휘둘려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내게도 사실이 아닌 양 부정하게 되는 큰 비밀이다.
그럼에도 나는 말이다. 대형서점도 가고 싶고, 오래 못 본 친구도 만나고 싶고, 근사하게 입고 아껴둔 샤넬가방을 메고 남편 사무실 앞에서 데이트도 하고 싶다.
그렇게 다시는 뚱보 공황을 비밀로 안은 채 살고 싶지 않다.
둘째가 한 단어씩만 내뱉다 처음 문장으로 한 말은 “새가 갔어”였다.
어느 날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가 조금은 정교해진 손짓으로 햇빛을 가리키며 한 말이다.
“꿈을 꾼 거야.
꿈에 새가 나왔었구나.
잡고 싶은데 날아갔구나.
다음번 꿈에 또 올 거야. “
꿈을 꿨더라도 그 언어가 꿈인지 몰랐을 아이는 그래도 끄덕끄덕했다.
누군가 내게 그때의 괜찮은 엄마였던 나처럼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 상상하는 날이 있다.
꿈을 꿨던 거라고
새를 잡고 싶은데 놓친 거뿐이라고..
젊음도
아이도
괜찮았던 시절도
다시 꿈꾸면 돌아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