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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Apr 22. 2022

A Different Kind Of Love

 1.

 아주 짙은 어둠이 깔린 물속이야. 내 영혼은 차디찬 심해로 끌려 내려가고 있어. 내가 그렇게 빨려 들어가는 동안, 너는 숨죽인 채로 내 영혼을 바라보기만 했지. 괜찮아? 힘겹게 꺼낸 위선 섞인 위로는 나에게 되려 역효과만 일어났어. 네가 날 이렇게 만들어놨으면서, 괜찮냐니? 넌 끝까지 나에게 희망고문만을 남겼어. 난 금방이라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데, 넌 자꾸 네 옆에 빈자리가 있다고 말했지. 아무리 봐도 비집고 들어갈 여유가 없는데, 너는 마치 그래 보라는 듯이, 널 위한 자리는 있다는 듯이 나에게 미소 지었잖아. 나는 그 미소만 믿고 너란 잠수함에 온 몸을 부딪혔던 거야. 내 온몸과 마음이 박살 나는지도 모르고.


 2.

 언젠가 나도 물밖에서 널 내려다보던 적이 있었어. 그때 넌 물속에 있었지. 넌 심해로 빨려 들어가면서도 힘겹게 내게 사랑을 고백했어. 자유를 갈망한다는 네 목소리에는 그 어떤 거짓도 없었어. 넌 정말로 자유를 원했어. 답답한 구속에서 꺼내 달라며 내게 손을 뻗었어. 넌 어쩌면 내가 널 구원해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라고 믿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너의 손을 잡으려 팔을 뻗었을 때, 넌 잡을 듯 말 듯하면서도 끝까지 내 손을 잡지 않았어. 여태껏 옳다고 믿어왔던 사랑과 진심, 그동안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을 허투루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게 설령 아주 잘못된 것, 혹은 오랫동안 고여서 썩어버리는 중인 고리타분한 생각일지라도 말이야.

 난 결국 네 손을 치워 버렸어. 생각해보니 억울하더라고. 내가 왜, 굳이 너의 손을 잡아주어야만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어. 넌 무엇이 소중한지를 몰라 모든 걸 다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이었지. 그런 욕심들이 널 구속하고 속박했던 거야. 넌 네가 버리지 못한 것들과 함께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그 진전 없는 제자리 헤엄에 답답해하면서도 짐을 버릴 생각을 못했어. 그건 온전히 네가 자초한 일이었어. 내가 널 어떻게 해줄 수 없었다는 말이야.

 난 아직도 네가 말하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어. 동전 뒤집는 것처럼, 그런 양면이 극명한 일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네 말을 말이야. 날 사랑한다면서, 모두를 사랑하지만 나에게만 특별히 느껴진다는 이 사랑을 설명하지 못하던, 새벽인지 밤인지 아침인지 모를 그 애매한 시간에 말이야. 글쎄, 눈에 보이듯 뻔한 관계를 두고 어떻게 그렇게 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누가 봐도 넌 날 사랑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럼에도 넌 나에게 말했지. 잘 모르겠어, 난 단지 널 사랑해, 그 이유뿐이야,라고. 네가 들이민 그 알량한 이유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너에게 얽매여 왔는지도 모르겠어. 네가 야속해. 어쩜 그렇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쉽게 할 수 있느냔 말이야.

 너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내뱉기까지, 내 목구멍에는 수많은 언어들이 조합되고 부서지기를 반복했어.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단순한 언어의 전달을 넘어선 개념이야. 마치 우주를 쏘다니던 별들을 하나하나 모으고, 구석에 울고 있던 마음과 어쩌면 성이 났을 감정들을 주워 뭉치는 느낌이었어. 그걸 뭉쳐서 내뱉은 말이 사랑해, 였어. 단 한 호흡으로 내뱉을 수 없는, 그토록 가볍게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이라는 거야. 하지만 넌 그 어느 때보다도 쉬운 사랑을 내뱉으면서, 나의 그런 마음을 신경 쓰는 것 따위 안중에도 없이, 그저 내 마음을 현혹시키려고만 했어. 지나고 보니 그런 사랑이었어. 내 영혼을 발목 잡는, 네 답답한 속박에 내 바짓 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는, 네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건 말이야.

 이제 너에게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도 지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지. 내가 너에게 뭐라고. 넌 어쨌든 네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서 달아날 거잖아. 날 온전히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최선을 다해 나에게서 멀어질 거잖아. 그 눈에 보이는 뻔한 답을 두고, 내가 어떻게 네 손을 잡겠어. 가지지 못한 것에 입술을 달싹이며, 제발 곁에 있어달라고 애원하는 널 보고서, 내가 어떻게 네 사랑을 선택하겠어. 우리가 손을 잡자마자 부서질 사랑 같은 거, 아주 눈에 잘 보이는데. 단지 내가 너의 사랑고백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날 다 가진 듯 오만하게 굴 네 모습이 보이는데. 그렇게 모든 게 거짓말로 붉게 물들게 될 텐데.

 그렇지만, 나에게 뱉은 네 모든 고백들을 거짓말로 치부하고 싶지 않아. 그래도 일말의 순간에는 나에게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다고, 사랑한다고 내뱉은 순간마저 오염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아. 네가 그랬잖아. 언제든 시간이 흘러도 날 사랑하겠다고. 그래, 그 말을 내뱉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겠지. 난 그 진심을 오래도록 지키고 싶어. 시간이 흘러도 날 사랑하겠다는 그 말, 내가 네 손을 잡지 않으면 영원히 지켜질 그 말,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되어도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처럼 남을 그 말을.

 영원히 잊지 마. 내가 널 떠난 것을 평생 원망하고, 슬퍼하고, 애도해. 내가 네 손을 놓쳐버린 순간을, 널 죽게 내버려 둔 시간을, 우리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말이야.


 3.

 그렇게 내 세상에도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어. 널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 순간부터 말이야. 발가락 사이에 찰랑거리던 물이 어느새 빛을 아득하게 만들 정도로 머리끝까지 가득 차올랐어.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물에 막혀서 먹먹하게 들렸어. 심해에 빠져드는 동안에도 너는 끝없이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 부디 사랑을 받아달라고, 절대 변치 않겠다고 말이야. 언젠가 거짓말이 될 진심을 쉴 새 없이 말이야.

 이제는 무엇이 옳은 건지도 모르겠어. 그때 네 고백에 수긍하고, 상처뿐인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게 맞았던 건지를. 난 단지 너와 헤어지는 게 싫어서, 평생 날 잊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던 건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 욕심이었던 걸까. 그럼 이로서 우리 동등해진 건가. 모두를 사랑하고 싶어 했던 너와 그 진심을 지키고 싶어 했던 나 말이야. 우리 모두 욕심부렸으니, 이렇게 숨 막히고 참담한 심해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겠지.

 영원히 나에게 말해. 날 사랑한다고, 잊지 않겠다고, 그러니 사랑을 받아달라고. 그 거짓이 될 진심들을 끝도 없이 말이야.


4.

 난 가끔 흔들려. 네 비참한 희망고문을 들을 때마다, 이 답답하고 차가운 물 같은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래서 때론 너의 변질될 고백을 믿어버리고 싶어. 정말 나만을 사랑해줄 거라는, 알면서도 속고 싶은 거짓말들. 그래서 네가 결국 날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또 몸을 부딪히는 거야. 부서져라고, 또 부서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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