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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Oct 05. 2022

열심히 사는데도 상실감이 짙을 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결핍 중 하나다


열심히만 하면 다 잘 되는 줄 알았어요.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때가 있다. 분명 남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바빠 보이는 나였지만, 이상하게 나는 하면 할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남들이 한다는 마케팅, 홍보, 광고까지 혼자 힘으로 일궈내고, 어떻게든 돈을 아끼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내 시간과 노동력을 아낌없이 썼음에도 제자리걸음이라고 느낄 때는, 적게라도 돈을 벌어서 아웃 소싱하는 데에 썼다. 정작 나에게 남는 돈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예금통장처럼, 언젠가 목돈으로 나에게 빛을 발할 것이라고 여겼으니까.

 1인 출판을 한다는 건, 어찌 보면 다방면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만 했다. 회계와 경영을 더불어 영업과 마케팅, 제품 생산과 유통에 대해서도 빠삭해야만 했다. 여러 아웃소싱을 하고, 직원을 채용할 만큼의 자금력이 있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건 이 세상의 모든 자영업자, 1인 사업가들에게도 숙제 같은 것일 테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하는 출판 사업에 대해 한 번도 불만을 품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더 게으르게 때문에 성과가 따라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문어발식의 사업 확장은 무리가 있었다. 특히나 혼자서 했기에 시간과 노동력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나에게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으면서,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 이기 때문에 이 모든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와 사치 같은 것은 나에게는 아주 먼 얘기처럼 느껴졌다. 기본적인 것만 해결되면 되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몇 년을 홀로 사업을 일궜지만, 그렇다고 수입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나는 점점 더 나의 몸과 영혼을 혹사시켰다. 피로와 잠을 이겨내기 위해 털어 넣던 커피도 이제는 카페인이 듣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캔씩 에너지 드링크를 털어 넣으면서,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업무에 임했다. 공용 오피스에서 내 칸막이에만 반짝 빛이 들었다.



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어쩌다 한 번씩은
거대한 상실감이 거침없이 밀려들어.
이 파도는 발가락에 힘주어 서있는 날
아무렇지도 않게 쓸고 가버리지.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꾸역꾸역 살고 있는데도 말이야.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혼자 일에만 열중하던 그때, 나에게 우울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스트레스의 연기가 가슴에서 피어오르자, 나는 하루 종일 한숨을 쉬며 일했다. 그래도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할 생각을 못했다. 밖에서 사 먹는 돈도 아까워 도시락을 싸고 다니고, 밥을 먹으면서도 두 눈은 모니터에 꽂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열심히만 할 줄 알았지, 내 일의 문제점을 깨닫지 못했다.

 어느 순간 내가 드립 커피가 된 기분이 들었다. 많은 양의 원두를 갈아 가루가 되고, 뜨거운 물을 소량 부어 추출하는 느낌. 내 몸을 갈아 뜨거운 물에 몸을 불려도, 내 노력의 대가는 겨우 커피 한 방울이었다. 나는 그 중독성 강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기 위해 나 스스로를 있는 힘껏 조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더 부풀었다. 그러다 이내 내 안에 갇혀있던 가스가 터지면서, 나는 천천히 식기 시작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밤마다 울었다. 열심히, 꾸역꾸역 살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대가는 무척이나 혹독했다. 세상은 열심히만 살아서는 보상을 쥐어주지 않았다. 나는 사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줄 몰라, 그저 열심히 몸만 갈아댔던 것이었다.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다시 시작하는 거야.



 우울감이 가져다준 강제 휴식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아닌 무기력의 늪으로 끌어당겼다. 밤새 우느라 체력은 바닥이 되었고, 다음날 오히려 일을 할 수 없었다. 일을 하지 못하면 또 게으른 나 자신을 탓하면서 또 울었다. 울다 지치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내 안에 눈물이 메말라버리고 말았다. 어느 순간 슬프지도, 내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도 않게 되었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내가 어떤 목표를 향해 열중하던 모습을, 유체 이탈하여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멍청할 정도로 성실했다. 온몸이 부서져라 꿈을 향해 달리기만 했다. 삶에 정답은 없었지만, 목표에는 방향이라는 것이 있었다. 정답과 방향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나는 열망만 차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방법을 모른 채로 달려가기만 했다. 그러니 이곳저곳 부딪힐 수밖에 없었을 테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결핍 중 하나다. 내 삶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계속 채워 넣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욕심이 크기 때문에, 나는 빨리 그 꿈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열망과 조급함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꾸준히 하고 있는데도 진전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때는 내가 걸어가는 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가 가는 방향이 돌아가는 방향은 아닌지, 나는 돌아가서라도 이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있는지, 감내할 수 없다면 지금의 내가 버려야 할 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삶은 없다. 그렇기에 꿈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꿈을 꾸지만, 되려 평안하다. 눈앞에 당장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마음을 가지기 위해 이상을 버렸다. 다만, 지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좀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생각하기로 했다. '내 꿈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 정도 고통쯤은 감내해야 해'라고 으스대지 않는다.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기로 한다. 이번 달 매출이 어쨌든, 매출이 떨어졌다고 해서 더 고통스럽게 나를 옥죄지 않기로 한다. 이번 달 벌어들인 수익으로, 어떻게 사업을 이끌어 나갈지를 고민하고, 지금의 예산에서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한다. 끊임없이, 그리고 꾸준하게.

 숫자는 자극적이라 쉽게 좌절을 맛볼 수도, 오만해질 수도 있다. 그 숫자에 휘둘려 하루를 변동하는 감정에 흘려보내지 않아야 한다. 잔잔하고, 평화롭게 그리고 꾸준히 '적정'한 나 자신을 찾는 시간을 보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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