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여인

by 남쪽맑은물

베란다 문을 열다가 멈칫합니다. 외부에서 무법자처럼 밀려오는 소음을 감당할 수 없어서입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도로변에 있습니다. 버스정류장에 모여있던 소리가 열린 베란다문을 통과해 거실로 와락 달려듭니다. 문을 열면 새소리나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바라지만, 그래도 너무 시끄럽습니다.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추고 떠나는 소리와 신호등 앞에서 녹색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의 공회전 소리는 마치 전투를 위협하는 함성 같습니다.

여름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때가 되어 맘껏 울어 젖히는 매미 소리, 매미 종족 전체가 맹렬히 울어대는 소리는 그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목적이 없어 보입니다. 그저 시간과 공간에 있는 어떤 여백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만 느껴지는 울음입니다. 울어야겠다는 목적보다는 울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울음을 삼켜버리는 소음입니다. 특히 오는 날, 아파트 사이 이차선 도로에서 발악적으로 생성하는 차량의 엔진 소음은 가히 온 세상의 모든 소리를 압도하고도 남을 만한 굉음입니다. 자동차 경적과 정차했던 버스가 출발하면서 마치 방귀 뀌듯이 뿡, 하고 뱉어내는 소음은 아파트 회색벽을 때리며 이렇게 저렇게 열린 공간으로 잽싸게 들어갑니다. 벽에 부딪혀 허비적거리는 소리마저 열려 있는 창문으로 들어갈 때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유령 같습니다. 새로 이사 온 집이 이렇게 시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사하고는 처음 맞는 여름입니다.


소리는 물체의 진동에 의해 생긴 음파가 귀청을 울리어 귀에 들리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습니다.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행위와 그 결과물이 소리라면 세상의 모든 만물이 소리를 내면서 살아간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만물이 부딪치는 결과물인 소리가 이천 번 이상의 진동이면 듣기에 불쾌한 소리가 된답니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동반자가 된 소리가 소음이라는 낱말을 탄생시키는 순간입니다. 번쩍번쩍한 도시의 삶을 살아가려면 적응해야 할 일임에도 온몸에 돋아난 더듬이는 빗디딘 소리의 경쟁을 거부합니다. 이 여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걱정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태초에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인간은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만들어내느라 애를 써왔습니다. 그 노력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했습니다. 다양한 음악을 위해 만들어진 여러 악기는 신비로움, 그 자체입니다. 음악은 영겁에서 탄생한 예술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생명의 표현입니다.


‘호국 콘서트’에서 피리 부는 그녀를 만났습니다. 음악회 특성상 경쾌하고 민족의 기상을 표현하는 음악을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관현악을 동반한 피리 독주의 울렁임은 피리 부는 사나이(그림 형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사라진 아이들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은 동심 가득한 아름다운 곳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홀린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요. 그동안 시달렸던 소음으로부터 해방된 기분이었습니다. 피리 소리가 거칠고 날카로운 혼을 빼앗아 간다는 것이 그리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호흡을 고르면서 강약을 반복하며 길게 이어지는 소리는 속절없이 무언가에 둘러싸여 있는 인생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반복되는 행과 불행은 인생과 함께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했습니다. 손끝의 떨림으로 소리가 울리는 것을 조절하기 위해 그녀는 온몸을 움직였습니다. 손끝에 닿아 있는 피리와 손가락 힘이 어우러지기 위해 몸 전체로 숨을 쉬었습니다. 손끝 움직임을 멈추어야 소리가 날 때는 피리 구멍을 과감하게 막아 버렸습니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삶을 지켜나가야 할 때를 아는 듯했습니다. 열려야 소리가 나고, 닫혀야 소리가 나는 피리의 오묘함에 조율하는 삶을 어루만지게 했습니다.

피리 부는 그녀의 손가락 움직임이 우아했습니다. 길게 이어지고,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손동작이 사뿐사뿐했고, 신선한 바람에 꽃잎이 살랑이듯 연두색 저고리 소매와 도련에서 음표가 춤을 추었습니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의 작은 미동이 어깨, 배 그리고 다리로 전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떨리는 손가락과 피리의 만남이 그녀를 아름답게 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피리 연주는 태초의 자연과 함께한 생명체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인류가 최초로 만든 악기는 피리랍니다. 피리로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아마 종교의식이나 여러 행사의 신호, 음악을 담당했을 거로 생각합니다. 자연의 한 부분인 인간이 자연을 떠나 살 수 없음을 피리의 선율로 고백하지 않았을까요. 마음대로 끊을 수 없는 삶, 이어져 있는 것 같아도 때가 되면 예령 없이 끊어지는 삶, 생사화복이 반복되는 인생을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손으로 만든 피리로 순박한 삶을 이야기했을지도, 어째선지 매일 일어나는 밑없는 욕심에 대한 한탄을 표현했을지도, 재미없는 날도 재미있는 날이 되기를 소망하지 않았을까요.

어디에선가 피리 소리가 들립니다. 피리 연습하는지, 그다지 유려하지 않지만, 귀에 익은 동요가 들립니다. 깨끗하고 밝고 편안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좋은가요. 소리가 끝날 줄을 모릅니다. 깨끗하고 밝고 편안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이미 피리는 소리가 아닌 잉잉거리는 소음이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소박한 시간은 불퉁불퉁한 시간이 되어버립니다. 베란다 문을 닫으려고 몸을 움직이니 소음에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얼굴이 떠오릅니다. 몸과 마음은 어찌 싫은 것을 대번에 알고 찡그리는 얼굴이 될까요.

몸은 고개를 끄떡이며 마음에 전합니다. 소리가 소음이 되는 것은 계획이 없는 것이라고.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가 회색 콘크리트 벽을 뚫고 돌진하는 무기로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아무 예고 없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세상의 발견이라고. 잘 어울리지 않는, 오히려 가까운 사람이 잘 모르는, 원래부터 서로 좋아하지 않았던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다소 놀라운 일이지만 흥미로운 일이라고.

홧홧하게 점점 뜨거워지는 날씨에 베란다 문을 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올해, 극심한 가뭄으로 건조한 공기도 걱정입니다. 각질화된 소음은 습기 없는 환경을 더욱 약 오르게 합니다. 포한을 품은 듯, 메마른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은 씨근벌덕하며 열린 베란다 문을 통해 집안으로 재빠르게 들어옵니다. 비행기 이착륙 소리처럼 들리는 이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부화뇌동하는 소음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피리 부는 그녀가 보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그립습니다. 그 운율 따라 동굴이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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