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줄까요? 묻어주세요.
효소 찜질방에서 주인장과 주고받는 말이다. 그곳에는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직사각형 나무통이 있다. 그 통에는 개똥쑥, 약초 가루, 톱밥 등을 발효시킨 내용물이 가득하다. 주인장은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을 삽으로 판다. 파헤쳐진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 누우면, 얼굴만 남기고 파내었던 내용물로 온몸을 덮는다.
나는 얼굴만 내밀고 그 통속에 묻혀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효소에 의해 점점 몸이 뜨거워지며 숨이 가빠진다. 답답하다. 오 분만 있다가 나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생각한다. 그녀는 한국 전쟁이 끝난 다음 해에 태어나 순순한 유년기와 명석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친구들이 결혼할 무렵, 연기처럼, 나뭇잎처럼, 삶의 방향을 찾다가 성직자가 되었다. 범사에 감사하고, 기도하고, 두려움을 버리고, 사라졌던 빛을 기다리고, 슬퍼지는 얼굴을 기억하고, 회오리치는 순간에 두 손 모으고, 고통에 젖어드는 영혼을 생각하며, 가냘픈 깃털 같은 삶을 사랑했다.
죽음에 당면했을 때, 어쩌면 그녀는 두려움 없는 삶이 무엇인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의 마음이 무엇인지, 맞잡았던 축축한 손에서 느껴지는 습기의 의미가 무엇인지, 무너져 내리는 절망이 견딜만한 것인지, 편히 쉴 곳을 찾아 빛을 기다리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을지 모른다. 살고 싶다는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어느 날, 그녀는 그만 죄짓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침묵했다. 몸이 공기와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무언가를 흡수하고 분해하고 배출하는 생명의 특권을 놓아버렸다.
오 분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나. 늪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찜질방 공간을 메우고 있는 약초 향기가 몸과 마음을 자꾸 나무통 바닥으로 끌어당긴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마치 깊은 바닷속으로, 고통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다. 고통을 반으로 나누면, 사과나 배처럼 반쪽이 될까. 다시 칼로 자르면 사 등분이 되고 팔 등분이 될까. 십육 등분으로 나눈다면 고통이 십육 분의 일로 나누어질까. 오히려 고통의 세포가 분열해 증가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고통은 고통의 자리에서 오롯이 겪어내야만 하는 운명인가. 고통도 운명이 다하여 죽어버리는 존재이기는 하는가. 고통이 죽어버린다면 그 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장례식 날, 그녀의 엄마는 많이 울었다. 죽음을 무엇으로 애도할 수 있을까. 엄마는 그녀가 믿었던 신을 저주했다. 신의 존재를 거부했다. 그녀가 믿었던 신은 허구이며 만약 신이 있다면,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라며 신을 원망했다. 그녀의 죽음이 억울했기에 엄마는 목 놓아 울었고 탄식과 절망이 섞인 울음은 십자가를 흔들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었으므로 엄마의 습기 찬 눈앞에서 흔들리는 십자가는 의미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오는 죽음이지만 그녀에게 달려왔던 죽음은 너무 빨랐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엄마는 애통하고 분노했다. 엄마의 울음은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애끓는 외침이었다. 삼박사일의 장례 일정 동안, 이승을 떠난 그녀는 조용했고 이승에 남은 엄마는 울었다.
효소로 덮여 있던 몸이 꿈틀거린다. 답답한 생각이 몸도 답답하게 만든다. 먼저 왼팔을 밖으로 빼낸다. 시원하다. 이어 오른팔도 빼낸다. 살 것 같다. 얼마 동안은 더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숨 쉴 수 없는 상황이란 죽을 수 있는 상황이다. 죽을 수 있는 상황이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다. 죽지 않기 위해 몸을 조금 움직이고 숨을 쉬기 위해 들숨과 날숨을 고른다. 눈동자를 움직이며 천장의 무늬를 쫓아가고, 외부로 기운을 보내기 위해 내부 기운을 확인한다. 그녀와 엄마의 목소리가 톱밥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삶과 죽음이 목소리로 만난다.
엄마는 그녀를 간호했다. 엄마는 그녀에게 종종, 자주, 말했다. 그녀는 엄마의 딸이며, 성직자이며, 남편이며, 친구이며, 동반자라고. 엄마가 죽을 때까지 함께 있자고. 그녀는 엄마의 말을 귀여겨 들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과부인 엄마가 말 대신 마음으로 독신인 그녀를 어루만지고 있다는 것을. 발화하는 언어 너머의, 나이의 위아래가 아닌, 모녀 관계가 아닌 산만한 세상에서 겪은 넋두리를 세월의 주름과 주름으로 이어가고 싶은 마음을. 마지막으로 움켜쥐고 있던 그녀의 손바닥에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여자의 생이, 한 인간의 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그녀의 손에 담긴 하얗고 하얀 생을 모를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을. 그러나 그녀는 떠났고 엄마는 남았다. 그녀는 숨을 쉬지 않았고 엄마는 숨이 끊어질 듯 울었다.
숨이 막힌다. 생명의 특권을 놓칠 수 없어 효소 나무통에서 나온다. 주인장은 내가 나온 빈 구덩이를 다시 삽으로 발효한 내용물 채워 넣고 탕탕 두드린다. 평평하고 가지런한 표면이 된 찜질통 속에서 좋은 미생물이 번식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을 묻어주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말 못 했던 사연과 말 못 할 사연을 묻어주기 위해. 단단한 말은 연약한 말을 소외시키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작지만 미세하게 속삭이던 말이 톱밥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 말이 약초와 쑥이 섞인 효소 향을 내며 마음에 닿는다. 마음에 닿은 말이 눅눅한 톱밥처럼 발효되어 후덥지근한 마음을 안온하게 만든다.
엄마는 그녀가 떠나고 몇 년을 살았다. 엄마는 소리 내어 울고 소리 죽여 울다 온기 있는 손에 쥐고 있던 삶의 풍경을 내려놓고 남편과 그녀 곁으로 갔다. 엄마가 죽을 때는 그녀가 믿었던 신을 저주하지 않았다. 엉켜있는 감정의 실타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부러진 팔이 나아지는 것처럼, 아팠던 두통이 괜찮아지는 것처럼, 부서졌던 마음도 이제는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렇게 엄마는 말을 삼키고 울음을 그치고 눈을 감고 숨을 멈췄다.
묻어주세요.
엄마와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주인장에게 다시 묻어달라고 부탁한다. 주인장이 삽으로 내 몸이 들어갈 구덩이를 판다. 그곳에 눕는다. 얼굴만 남기고 톱밥으로 몸을 덮는다.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눈을 감으니 편안해진다. 마치 누워있는 풀이 속삭이는 것처럼 발효된 톱밥 사이로 정겨운 목소리가 들린다. 속닥속닥 들려오는 목소리가 피로와 열패감에 시달렸던 일들을 발효한다. 땅속의 풀뿌리가 세상의 말을 기다리듯, 곡예하는 것처럼 내뱉었던 허물 가득한 말이 톱밥 사이사이로 스며든다.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