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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일 Apr 23. 2024

물의 기억

섬망


지옥의 문에서 떨궈진 나는 삶의 모서리로 밀려났다. 위태롭고, 절박한 날들이 이어졌.  모든 가능성이 죽고 나서야 의지가 태어나는 것일까? 의지는 아프고 슬픈 것이 되었다.


매일이 희미했고, 온전치 못했다. 요일이나 계절의 흐름 없이 그저 아프고, 지 못해 누워있는 날들이었다. 그러면서 잠깐씩 나를 잊는다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지내는 일이 생다.


열에 시달리며 정신이 아득해지던 날, 나는 모서리 끝으로 흘러내렸고, 한참이 지나서야 바닥에 닿았다. 마나 지났을까,  분위기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나는 태양 아래 흔들리고 있었다. 안개처럼 흩어져 있던 것들이 비가 되어 내렸고, 대륙의 초원과 깊은 호수가 드러났다. 협곡을 달려온 바람이 숨을 고르며 자작거렸고, 무수한 그림자들이 호수에 미끄러지며 이야기를 쏟아냈다.


뜨거운 날들이 지나다 보면, 어느새 땅에 스민 것들이 가만가만 몸에 담겼다. 바람이 불면 몸을 흔들며 사박사박거렸고, 그럴 때면 웬일인지 저절로 물이 올라 저 멀리까지 손이 닿으며 자라났다.


그리고......

숨 막히는 빼곡함 속에서도 작은 돌파구가 보이면, 그쪽을 향해 희망과 의지가 부피를 키웠다.


물은 기억하고 있었다. 간의 일들을 고도 하늘에 올고, 비가 되어 내고, 흘러 흘러 내 안에 다시 들고 차올랐다. 


세상과 연결되며 생생해지는 감정들


몽구르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나 닿게 되고


소진되지 않기에 내 안의 남은 힘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와 욕망...


태어나 처음 느껴본 강렬함


여름이었다.




그날 밤, 하늘별이 가득했다. 울지 못한 사연들을 그렁그렁 매달고 붙어있느라 애쓰고 있었다. 자기 연민과 무력감, 안타까움......

마음이 수선스러워  집중할 수가 없었다.


'후드득'


별이 떨어지나 싶던 찰나, 나는 돌아와 삐걱대는 몸에 다시 담다. 그곳에선 수많은 날들이 지나며 피나고 는데, 이곳엔 들어 푸석대는  몸만이 누워있었다.


그곳의 이야기들을 몇 번이고 찾아가 데려오고 싶지만, 내가 밟아온 자국이 없어 돌아갈 길이 없다. 삶은 단지 그곳에서 그러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청춘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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