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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일 Apr 16. 2024

지옥의 문

파열

일에만 매몰되어 살다 갑자기 퇴사하고 나니, 즐기는 일은 낯설고 어려웠다. 그저 매일 수성동 계곡에 머무를  뿐이었다. 더 이상 돈 벌어오라는 사람도 없고, 보고서 얼른 써내라고 닦달하는 이도 없는 고요함은 좋았지만, 이제 내가 고장 나버렸다는 증거이기에 왠지 서글프고 외로웠다.


누군가 내게 원하는 것 없이 다정한 말을 걸어오고, 옆에 머물러 있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의 집에 아무 때나 놀러 와 먹고 어질러놓고 가는 친구들이 있는 삶은 어떤 것일까?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끔찍하게 퍼부었던 술, 이제 그 술을 내 손으로 빚으며, 계절의 바람, 온도, 습기를 담아 바지런히 친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싶어 졌다. 그때는......


그래서 서촌 마당 있는 주택에 세를 얻었고, 난생처음 기쁨이 차올랐. 그런데, 그 집이 누수로 썩어 들어갔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어주지 않고 버티는 통에 속을 끓이다 간신히 이사를 다. 그런데, 이사한 집 또한 누수가 시작되어 집을 내놓았, 새 임차인을 찾던 날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곤 수술 직전에 간신히 구한 병원 근처 깨끗하게 리모델링한 '비싼' 집을 계약했는데, 그 집에 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방사치료를 받는 여름내 곰팡이 냄새가 나더니, 결국 서장 뒤 벽지가 흠뻑 젖어 곰팡이가 가득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 모든 것이 그 짧은 기간동안 벌어진 일이라니, 이게 어떻게 현실일 수가 있을까. 세상이 나를 버린 같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다시 부동산앱을 켜서 이사 갈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표준치료 후 약해진 몸은 앓아누 집이 필요했다. 약해진 폐는 검은곰팡이를 이기기 힘들었고, 어질어질 걸어 나가 스타벅스를 전전하는 일도 몹 고됐다.  


'준공 5년 이내 신축아파트'


오직 이것만으로 걸러내 예산과 날짜가 맞는 집을 계약했다. 소중히 간직해 온 모든 소소한 물건들, 서촌에서 키우려던 바램들 챙길 여력도 없었다. 그저 부종 없이 한 팔로 감당가능한 짐을 챙겨 이사했다.


그렇게 아무런 연고도, 기대도 없는 집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수술자국이나 방사 화상이야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겠지만,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며 몸 이곳저곳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수시로 찾아오는 심장문제로 숨이 차고 어지러워 응급실과 심장내과를 들락거렸고,  잦은 대상포진과 두드러기에 시달렸다. 수술직전까지 저혈압으로 고생했는데 별안간 고혈압 환자가 되었고, 스타틴과 항히스타민제, 소염진통제 같은 잘한 약들이 계속  추가되었다.


기력 없이 있는 시간들이 번지며 하루가 짧아졌다. 부지런히 걷고 움직이며 몸을 회복시키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이내 좌절되었다. 단풍이 대단했던 늦가을 아침, 두 무릎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곤 잘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세상의 채도가 낮아졌고, 내게선 어떤 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파쇄되길 기다리는 불량품처럼 고요히 누워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모든 것이 차곡차곡 벌어질 준비를 시작한 것은.'


 불행의 시작 찾아 지난날을 톺아보다. 칼날을 쥔 마음은 그동안 차마 마주하지 못했던 과거의 이곳저곳을 과감히 넘나들었다.


수성동 계곡에서의 마음들을 잊으려 할수록 더 애절하게 원하게 되었고, 이룰 수 없는 내 몸을 보며 마음이 부서졌다. 그러곤, 그 날카로운 파편들이 타인을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부모가 뱉어내는 독을 먹고 자라났고, 누군가가 마구 던져버린 허섭스레기들을 짊어지고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과로와 야만스러운 회식에 시달리며 새벽이면 자주 토했고, 많은 밤 자작자작 타올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은 그렇게 내 젊음을 마구 가져다 쓰고 아무 데나 버렸다. 미움, 증오, 원망을 힘으로 삶을 끌고 왔고, 그것이 지금의 나다.  모든 것이 다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 


이런 생각에 다다르자, 내 속의 지옥이 무서운 기세로 타올랐다.  


'지금껏 내 삶은 없었다. 이제 겨우 작은 기쁨에 닿으려 한 내게 세상이 이래선 안된다. 나는 이렇게 망가진 몸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너무나도 불공평한 일이다. 나는 그간 누리지 못한 완벽한 날들을 오롯이 누리며 살아가야만 한다......'


저들을 짓누르며 위로 올라 도망치려 안간힘을 썼다. 그렇지만, 저것들과 내가 온통 아우성이라 잘 나아가지 못했고, 뒤늦은 후회마저 찾아와 나를 잡았다.


고통이 무엇이고, 기쁨이 무엇이기에 그렇게나 모든 날들이 힘들기만 했을까? 도대체 나는 왜 그리 살았을까? 나는 저들보다 잘할 수 있었을까?


나와 뒤엉켜 힘들게 하는 것들의 머리끄덩이를 잡끌어내리니 죄 초점 잃은 내 얼굴이었고, 놀라 물러서며 부딪힌 것도 나의 등이고, 짓밟고 있는 머리도 나의 것이다. 그저  자신의 불행에 매몰되어 미래를 꿈꾸고 계획하며 살아보지 못했던 날들, 스스로에게 기쁨을 주는 법을 알지 못하고 그저 헐떡이며 무력함에 기 살아온 시간들...... 저들과 나는 같다.


그때, 무언가 잽싸게 내  명치를 가격했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굴러 떨어졌다.


저들과 나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가 놓였고, 바위처럼 단단한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예전의 싱싱했던 세상들 무너지며 꺼먼 바닷속으로 텀벙이며 빠졌다.


그리고......

이렇게 온 세상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부스스 일어서는 것이 있었다.


그렇게 슬픔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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