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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n 17. 2024

이것은 내 아버지의 이야기다

2024.6.17.


가까움과 멈, 익숙함과 낯섦,

애틋한 막연함을 품은 감사함.

숨은 들숨과 날숨이 있다.

숨을 들이켜기만 하는 사람도,

내쉬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두 숨은 나눌 수 없다.

시소처럼 거리를 두고 있지만

하나로 연결된 사이라서

한쪽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다른 쪽도 제대로 있기 힘든 관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아는 건

별로 없는 지난 70여 년 속의 흔적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작고 멀게만 느껴졌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한없이 커지고

깊어지며 밝아지는 구름 같은 당신.

애증이라는 낡은 나무발판 틈새에서

피어나는 새싹, 이 새싹은 나도 그 사람,

아버지가 되었을 때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씨앗이 피워낸 잎사귀.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그도 나를 그렇게 보고 느꼈을 테야.

누군가의 모든 세상이 되고

삶의 기준이 되어 줄 존재.

내가 그랬듯 내게 그랬던 남자.

이것은 내 아버지의 이야기다.


한 사람이 태어난다.

인간(人間)은 사람과 사람 사이다.

사람 사이에서 사람이 날 수 있다.

만남, 사랑, 임신, 출산, 그리고 성장.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이 거대한 흐름의 원천이 되는 그리움.

되어 봐야만 그 뜻과 무게를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는 이름, 아버지.

아버지가 된다는 건 삶을 녹여내는 거래.

끈적이는 고혈이 북돋은 나무 한 그루.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

나의 아버지, 그의 아버지,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가 이어졌다.

수평선 너머 바다처럼,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잔잔해 보여도 넘실대는 유전의 물결.

그중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파도 하나.

눈물로 씻어낼 수 없는 닮음의 향기.


이사를 준비하다가 옛 사진을 봤다.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 종이는 아니고

주먹만 한 둥그런 철제 명판에 입혀진

코팅 사진에는 햇살 속 눈부신 쑥스럼을

품은 꼬마와 무던하고 듬직한 아버지가

나란히 서 있었다. 가죽점퍼가 멋지던 아버지.

누군가 찍어주었을 그 순간은 명판 뒤 옷핀처럼

내 기억 속에 매달려 있다.

졸업식을 마치고 무언가 맛있는 걸 먹은 것 같다.

자장면일까.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마 그랬을 듯.

내가 먹고 싶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말없는 사진처럼 아버지와 나는

평소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가까웠지만 가깝지는 못했던 느낌,

지금도 아버지와 통화할 땐

많은 이야기가 오가지는 못한다.

아버지를 찾아뵐 때도 그런 편인데

전화보다는 그나마 나은 것 같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다.

그가 살아온 세월과 고민을 안아보고 싶다.

나의 뿌리를 잊지 않고 싶다.


이것은 내 아버지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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