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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20. 2024

오렌지와 사과

2024.7.20.


흐린 아침이다.

지난주 내내 비가 내렸다.

장마에 폭우를 더한 날씨로

많은 피해가 생겼다.

어제는 비가 좀 잦아들었다.

오후에는 날이 개었다.

저녁에는 구름이 몰려왔다가

보슬비가 살짝 내렸다.


그들은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밝은 암회색과 어두운 연회색으로

멀리멀리 펼쳐진 하늘과 바다,

두 경계를 긋는 가늘고 긴

청회색 수평선이 그윽하게

내려앉은 물결의 향연,

평안하고 평화롭다.


그들은 여름휴가 중이다.

제주도에 왔다.

매년 둘이서 오던 곳을

올해는 가슴에 새 생명을 품고 왔다.

가을에 만날 소중한 사랑,

종종 두근거리는 몸짓을

두드리는 뱃속에 희망이 자라고 있다.

여느 여행과 달리

일정을 세밀하게 계획하지 않았다.

첫날 갤러리 방문과 저녁 식사,

그리고 며칠 묵을 숙소 예약이 다였다.

눈뜨면 일어나고 졸리면 누웠다.

배고프면 식사하고 심심할 땐 산책했다.

차는 빌렸지만 많이 타지는 않았다.

걷고, 멈추고, 머무르고, 둘러보았다.

일정에 쫓기지 않으니 순간이 충만했다.

스스로를 위한 헌정의 여유,

서로를 위한 위로의 시간이 온전히 담겼다.

책을 읽고 싶을 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을 땐 글을 썼다.

산뜻한 음악도 함께 했다.


주말에 그랬듯, 그들은 하루에 두 끼

늦은 아침과 이른 저녁을 먹었다.

자연스레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

식당에서 한가한 식사를 했다.

오후에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쉬었다.

억지로 헤매지 않고 하루의 물결 위에서

힘을 빼고 가만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

걸음걸음마다

푹신한 감촉이 돋아나고

들숨날숨마다

그윽한 미소가 피어났다.

촉촉한 풀향기와

향긋한 꽃내음이

숲길에 가득했다.

경쾌한 파도소리에 리듬을 맞추고

까슬한 모래사장에 발길을 맞췄다.

사진도 많이 남겼다.


오늘 첫끼는 브런치 카페에서 먹었다.

두 가지 음료수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케일사과 주스,

다른 건 당근오렌지주스였다.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오후에 글을 쓰는데

마침 오늘 주제가 '오렌지와 사과'네.

오전에 시킨 메뉴에 글감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신기하네.

그들은 서로 번갈아 한 모금씩 맛보았다.

당근오렌지주스는 아삭하며 새콤했고

케일사과주스는 달콤하며 상큼했다.

각자의 느낌을 담은 맛이 좋았고

음식과도 맛나게 잘 어울렸다.

노란 연주황빛 감촉과

초록초록한 시원함이

가슴을 적시는 입맛,

좋구나. 이 맛이야.

오렌지와 사과는 그렇게 글감으로,

파랗게 칠한 파란 하늘 속

파란 비행기처럼

익숙한 듯 신기한 풍경처럼

실체로 다가와 실제로 마주했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의 만남도, 사랑도

그렇게 이루어졌네.

그래, 신기한 게 많았지.

참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

오늘 다시 느끼는 하루.

햇살이 났다.


오렌지와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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