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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19. 2024

이것이 그녀(그)의 몸의 지도다.

2024.7.19.


몸이란 무엇인가.

신체, 바디라고도 하는 무언가다.

'나'라는 인식의 바탕이 된다.

내가 움직일 수 있고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최소한의 테두리이자

최대한의 표현이기도 하다.

외부 감각을 받아들이고

내부 정보를 드러내는 분명한 기준.

판단과 해석과 행동이 빚어져

'움직인다'는 결과 그 자체가 되고

결과를 드러내는 과정이 담기는 통로,

그게 몸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이 곧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몸이기도 하지만 몸이

나의 전부라고 하기는, 글쎄다.

아무튼 몸은 많은 것을 말한다.

흘러간 세월 속 희미한 과거가 묻어나고

예전부터 이어 온 욕망과 의지가 맺혀

다양한 결정이 드러난다.

운동하는 몸이 그렇고

술담배하는 몸이 그렇고

부지런한 몸이, 게으른 몸이 그렇다.


그녀는 말랐다. 많이 말랐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고

가리는 음식도 없었다.

양껏 먹고 마시는 날도 꽤 많았는데

소화가 잘 안 된 날은 별로 없었다.

또래보다 식사량이 두 배에 가까운

습관을 꽤 오랫동안 유지했다.

살이 찐다는 각종 약도

참 많이 삼키고 들이켰다.

그래도 그녀는 저체중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문제가 뭘까.


그녀는 유명하다는 병원은 모두 다니고

야식도 먹고 늦잠도 잤다.

아, 입속으로 들어간 그 많던 칼로리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네.

친구들은 살 안 쪄서 좋겠다며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에게는 그게 큰 고민이었다.

20대가 되기 전에는 평범한

보통 체격이었는데 성인이 되고

체중이 빠지기 시작했다.

각종 검사에도 이상이 없었다.

그런 날이 10년이 지나고

20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뭔가 스트레스를 주는

분명한 원인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직장을 몇 번 옮긴 적이 있고

도중에 쉰 날도 꽤 있었다.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은데

몸은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살면서 많이 불편한 일은 별로 없었는데...

잘 모르겠다. 내가 안 불편한 건지,

나는 괜찮은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한 건지,

다른 사람은 상관없는데

내가 스스로 불편하게 여기는지

확실치 않았다.

이제는 그런 막연한 기분도 흐릿해져서

가슴 바닥에 얇게 깔려있다.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작은 존재감.

땅속에 살지만 길 위로 줄지어 다니는

개미떼처럼, 평소에는 잘 안 보이다가

가끔씩 마음밭을 새카맣게 뒤덮는 불안감,

그리고 그녀 모르게 감정이 묻어나는

그녀의 몸, 이것이 그녀의 몸의 지도다.


이것이 그녀의 몸의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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