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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25. 2024

우리는 그 일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2024.7.25.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야."

K가 입을 열었다.

"언젠간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영원한 비밀은 없다니까."

P가 맞장구쳤다.


위장병이 있던 숙부는

10년 전 즈음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호방한 성격에 남을 돕기 좋아했던 그는

이상하리만치 건강 검진을 받지 않았다.

그랬던 숙부가

언제부턴가 속이 불편하다는 말을 종종 했다.

술을 좋아했지만 타고난 건강 체질에다가

20대부터 마라톤을 했기에

주위의 걱정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남자,

오랜 실랑이 끝에 받은 검사에서

위암과 췌장암 판정을 받고

망연자실하던 표정,

다른 기관에도 전이가 되어

길어야 1년이라는 시한부 삶을

4년 채우고 떠난 사람.


고통 없는 날은 없었지만

편안한 잠 속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낸 그날

이틀 전에 K는 숙부를 찾아뵈었다.

여윈 몸에 거동도 불편했고

말도 조금 어눌했지만

눈빛은 아직 형형했다.

"그래... 요즘 직장일은 어떠니?"

"괜찮아요, 숙부. 이제 2년 차 되니까

  익숙해진 것 같아요."

"그래, 아무렴 그래야지. 우리 멋진 조카님은

  잘 해낼 줄 알았지, 그럼."

"좀 어떠세요, 몸은 괜찮으세요?"

"뭐 똑같지.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껏 잘 견뎌오셨는데..."

"식구들 고생시키는 것도 미안하고 지겹다."

"..."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부정하기도, 긍정하기도 어려웠다.

K는 더 이어갈 말이 떠오르지 않아

시선을 밑으로 내렸는데

숙부가 나지막이 읊조리듯 입을 열었다.

"K야,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이제 갈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잠시 뜸 들이던 그는

다물었던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내가 널 많이 믿는 거 알지?

  코빼기도 안 보이는 자식들보다

  이렇게라도 찾아와 주고...

  하긴 어릴 때도 나를 잘 따라주었지..."


숙부가 망설이던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지만 재촉할 수는 없지.

잠깐의 침묵, 커다란 의문.

마침내 들리는, 떨리는 목소리.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지금 안 하면 못할 것 같아.

  이건 내 자식들과도, 유산과도 관련 있지.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야..."


그날 밤이 지나고 이틀 뒤

숙부는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 우리는

그 일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내가 그날 숙부를 찾아갔던 건 잘한 일일까.

알 수 없다. 아직까지는.

K는 고민에 빠졌다.

밤이 깊어갔다.


우리는 그 일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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