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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26. 2024

낯선 길로 접어들기

2024.7.26.


산책길을 나섰다.

매일 저녁을 먹고 걷던 길,

오늘은 좀 일찍 나왔다.

잠을 설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잠시 뒤척이다 물 한 잔 마시고

집을 나섰다.

아직은 어스름한 하늘,

늦여름이 지나 가을 길목에 들어선

계절의 바람이 살결을 문지른다.


집에서 20여 분 걸으면 산이 있다.

국립공원과 맞닿은 산줄기의 일부,

도심 속 자연공원을 아직 제대로

둘러보지는 못했는데

산책하다 보면 욕심이 나기도 한다.

작년에 다친 다리가 다 낫질 않아서

내년쯤엔 코스를 제대로 밟아봐야지.


익숙한 진입로다.

팻말이 세워지고

얼마나 많은 이가 다녀갔을까.

빛바랜 모서리를 스쳐간

수많은 손길을 생각해 봤다.

사진도 많이 찍었을 거야.

나는 오늘도 내 삶의 한 조각을

사진처럼 간직하며 길을 나선다.

걷다 보면 세 갈래 갈림길이 있다.

왼쪽은 평소 다니던 제일 짧은 길,

오른쪽은 산 넘어 이어지는 길,

가운데는 아직 한 번도 안 가본 길.

오늘따라 이 길로 가고 싶은걸.

지금껏 별다른 희망 없이

살아진 시간을 되돌아봤다.

요즘 작은 꿈이 하나 생겼다.

앞으로 다가올 소중한 나날 속에

내 꿈도 살며시 피어났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꿈이 주어졌을 때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힘도

함께 주어진다고 하던데,

가운데 길로 가면

좋은 일이 생길 듯.

그래, 가보자.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로, 이를테면

모데라토(moderato) 걸음으로

거닐어 본다.

밤의 장막에 덮인 바다는

보이지 않아도 출렁이듯

알 수 없는 앞날 또한

다가오고 있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빛이 들기 시작했다.

길도 점점 밝아진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너비 위로 잔잔한 흙이 깔렸다.

보드랍고 단단한 바닥 위로

한 걸음씩 디딤발을 올리고 내린다.

이름 모를 새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네.

노래하는 걸까, 경계하는 걸까.

듣기는 좋다. 방해하진 않을게.

상큼한 풀내음이

햇살 조각에 실려 살랑인다.

일정한 리듬으로 다가오고

멀어지는 눈앞의 풍경이

신선하고 또 익숙하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평지가 많아 걷기 편하네.

이 길도 자주 와야겠다.

아, 이제 아침이 밝았다.

오늘 하루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이 낯선 길로 접어들기 덕분에.


낯선 길로 접어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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