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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27. 2024

나는 원래 다른 누군가가 되었어야 할 사람이다

2024.7.27.


간식을 먹었다.

과일 속에 담긴 씨앗,

그것은 과일이 될 예정을 품고 있다.

자궁이 감싼 아기처럼

과육이 두른 종자.

자기의 운명을 알고 있을까.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

구분해서 분별하고 있을까.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까.

과연 그런 것이 있기는 할까.

씨앗은 말이 없고 아기는 잠들었다.


내 삶은 나의 것일까.

은혜로운 여름 가득한

짙푸른 물결이 풍성하다.

신록은 여름의 것일까,

아니면 누구 것일까.

모두의 곁을 스치는 무더운 기운은

영원하지 않다.

홀연 다가온 날씨도

어느덧 지나가 버리듯

내 것인 듯 아는 듯하네.


가끔 내 삶이, 이 세상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정해진 대본을 연기하는 느낌,

'지구'라는 무대 위에서

'사람'이라는 역할을

소화하는 건 아닐까.

한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역에 적임자를 맡기듯,

내가 살고 있는 '이 인생'은

내가 제일 잘 펼쳐낼 수 있기에

'나'라는 사람이 '내 삶'을

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C는 요즘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두 자녀도 잘 키워서 독립시키고

그전에 은퇴해서 비교적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배우자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없어 보였고

모든 게 순조로웠다.

C가 그런 생각을 처음 한 건

1년 전 즈음이었다.

어느 초가을 늦은 오후,

C는 작은 테라스에서

홀로 차를 마시다가

7마리 제비가 날아가는 풍경을 봤다.

어미 새가 새끼들 비행 연습을

시키는 걸까. 저 새들은

자기 임무에 충실하군.

혹시 제비가 아닌

다른 삶을 꿈꾸는 건 아닐까,

궁금해졌다.

그러다 C는 자신을 되돌아봤다.

지금껏 걸어온 길, 지나온 여정,

완벽하진 않지만 불행하지 않았어.

온유한 즐거움이 투명 레이스처럼

살랑거리던 나날, 지나 보면

참 감사하고 다행인 순간들,

잔잔한 미소는 입 속 꽃차 향기로

피어올라 추억으로 흩어졌다.

삶이라는 힘겨운 무게를 짊어진

모두에게 친절해야지, 생각했다.

나는 원래 다른 누군가가

되었어야 할 사람일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온전한 내가 되고

내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지.

그 가운데 행복이

행운처럼 떠올랐다.

아, 노을이 예쁘다.


나는 원래 다른 누군가가 되었어야 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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