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는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었다

2024.8.8.

by 친절한 James


꿈을 꾸다 일어났다.

원래 꿈을 잘 꾸지 않는데

요즘은 다르다.

이틀에서 사흘에 한 번씩

꿈을 꾸는 것 같다.

기억은 대개 희미하다.

장면이 생각날 듯 말 듯하다.

전반적인 색감이 두루뭉술 떠오르는데

구체적인 이미지는 흐릿하다.

무언가 꿈을 꾸었다는 느낌만 가득,

비눗방울 같은 심상이

둥둥 떠오르다가

눈을 뜨면 톡톡 터져버리곤 했다.

사람이 잠을 자는 동안

뇌척수액이 뇌를 씻어낸다는데,

그때 꿈도 같이 씻겨 내려가나 보다.


기억이 모호한 꿈이지만

때론 아주 선명한 날이 있다.

잠에서 깨고 시간이 지나도

대형 스크린 영화처럼

생생한 모습이

눈앞에 남아있을 때가 있다.

며칠 전 꿈이 그랬다.

낮이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터였나.

바닥에 둥근 구멍이 있고

아래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있었다.

꿈에서는 자신을 3인칭 시점에서

볼 수 있다. 나는 내가 사다리를 따라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무섭지는 않았다.

제3의 눈은 어두운 지하도

속속들이 볼 수 있었다.

물안경을 쓰고 물놀이를 하다가

잠수하면 물속 풍경이 드러난다.

수면 위와 아래 경치가 다르다.

몇 cm 차이가 아주 크다.

딱 그런 느낌이었다.

물낯 같은 땅의 겉면을 지나니

사방으로 무한히 펼쳐진 어둠의 공간,

그런데 잘 보인다.

저 아래 어슴푸레한 푸른빛을 머금은

암흑의 평지가 끝도 없이 광활하고

이곳의 지평선에는 연보랏빛 물결이

오로라처럼 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평지 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길고 커다란 연둣빛 잎이 서너 개씩 있는,

줄기가 없어 나무라기보다 해초류에 가까운

구조물들이 셀 수 없이 늘어서

반짝이고 있었다.

야자나무 같은 잎사귀가

바닷속 거대 미역처럼

부드러운 일렁임을

뽐내고 있었다.


깊이감에 감탄하는 공간 중간중간에

하얀 빛줄기가 뻗어 내려오다가

둥글게 뭉쳐 빛나고 있었다.

저곳은 지금 내가 내려온 곳처럼

윗세상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통로라는 걸 직감했다.

맨홀 같은 구조,

하늘과 바다를 담은,

어둡지만 밝은 묘한 공간.

누군가 공터에 있었나 보다.

여기 참 멋지다고, 한번

내려가 보라고 말한 것 같았다.

나는 사다리 중간에 매달려

사방을 한참 둘러보았다.

뭐랄까, 아주 세련된

고화질 아날로그 컴퓨터

화면 같은 경관을 바라보다가

다시 위로 올라왔다.


내가 처음 발견한 곳,

꿈속에서는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신비의 대륙을

탐험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꿈에서 본 영상을 파일로 만들어

보관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금방 유명한 영화감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꿈을 담은 USB, 괜찮을 듯.

아, 다시 꿈나라로 떠나볼까.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잘 자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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