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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Nov 01. 2024

여기는 나의 집이 아니다-엘리자베스 비숍의 작품에서

2024.11.1.


그녀는 두리번거렸다.

발을 더디 끌며

가구와 장식물을 쓰다듬었다.

"이건 뭐죠?"

그녀는 가녀린 손가락으로

장난감 같은 남녀 한쌍

작은 인형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아, 그건 제가 아내와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산 기념품이랍니다.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네요.

  프랑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둘러보고

  산 건데 혹시 뭔지 아시나요?"

"음...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익숙한 것 같은데..."

"생각나는 걸 편하게 얘기해 봐요."

"그 성당에 저도 가본 것 같아요.

  꽤 오래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날씨가 꽤 화창하고 사람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랬죠, 그랬겠죠. 유명한 곳이니까."

"그러고 보니 한 번만 간 건 아니고

  몇 번 갔던 것 같아요."

"누구랑 갔는지 기억나요?"

"친구였나, 여러 명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그래요, 아무튼 거기 간 걸 잊지 않았으니.

  이거는 말이죠..."


그는 그녀의 손마디 사이에 걸려 있던

인형 하나를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노트르담의 꼽추'란 작품이 있어요.

  이건 거기에 나온 주인공이에요.

  콰지모도라는 캐릭터고 '반쪽'이라는 뜻이죠."

"몸이 아픈가 봐요."

"맞아요. 척추 장애가 있고 애꾸눈이지만

  순애보를 펼쳐내죠."

"그럼 이건요?"

"이건 에스메랄다..."

"둘이 연인인가요?"

"아,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죠.

  원작 소설과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결론이 달라요."

"궁금하네요."


그는 콰지모도 같았다.

몸은 불편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아팠고

눈도 잘 보였지만

한쪽 눈을 잃은 것 같았다.

그녀와 함께 거닐던 파리 거리,

기념품을 고르던 추억,

책과 영화를 함께 읽고 보면서

눈물 흘리고 이야기하던 날들.

그녀의 기억이 돌아와

우리의 지난날을

함께 온전히 나눌 수 있다면.

서로 껴안은 우리의 두 유해가

먼지로 바스러지기 전에

우리의 사랑이 다시금 새로이

재생될 수 있기를,

재작년 '여기는 나의 집이 아니다'라고

그녀가 한 말이 허언이 되기를,

그는 오른손으로 에스메랄다 인형을

꼭 쥐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원했다.


여기는 나의 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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