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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Nov 02. 2024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우편물

2024.11.2.


"다녀왔습니다."

S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며

낮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왼손에는 낡은 에코 백과 큰 종이 가방을,

오른손에는 커다란 연회색 캐리어를

끼고 서 있었다. 피곤한 안색이지만

마음은 편해 보였다.


"오구오구, 고생 많았어요.

  먼 길 다녀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서 들어와요."

거실에 있던 P가 잰걸음으로 다가와

가방을 받으며 웃음 지었다.

그리고 깊은 포옹과 키스.


"한 달 만에 집에 오니까 어때요?"

"아, 집에 오니까 정말 좋아요.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S도 반가운 미소로 대답했다.

"처음에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는지

  너무 답답했어요. 귀국 날짜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 타니까

  비로소 실감이 나더라고요.

  이젠 출장도 별로 내키지 않아요."

"메시지를 주고받고, 전화하고,

  영상 통화를 해도 이렇게 직접 만나는 거랑

  비교할 수 없지요."

"물론이죠, 아 좋다."

S는 빨랫감과 큰 짐만 정리하고 샤워를 했다.


"한국에 돌아오니 왜 이렇게 더운지...

  이제 가을바람이 불 때도 되었는데 말이에요."

"이번주 들어 갑자기 기온이 높아졌어요.

  넣어 둔 반팔옷을 다시 꺼낼까 생각할 정도로요."

두 사람은 다과를 나누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 그런데 당신 앞으로 우편물이 하나 왔어요.

  무슨 연구소에서 보낸 것 같은데..."

P는 서재 책상에 있던 서류 봉투를 가져왔다.

"지난주에 온 건데 확인해 봐요."

빳빳하게 코팅된 노란 봉투를 받는 순간

S의 얼굴이 누렇게 굳었다.

안절부절못하고 눈을 굴리는 모습,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P가 걱정스레 물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나중에 볼게요.

  지금은 좀 피곤하네..."

"익일특급으로 온 등기 같은데

  빨리 확인해봐야 하지 않아요?"

"아, 이따가 볼게요."

S는 얼버무리며 화장실로 가버렸다.

P는 걱정도 되고 궁금했지만

일단 S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다음 날, 새벽 운동을 나간 S가 돌아올 때쯤

P가 서재로 가보니 봉투는 이미 뜯어져 있었다.

P는 내용물을 열어보았는데, 어라,

옅은 아이보리색 편지지 세 장이

텅 비어 있었다. 글씨 하나 없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우편물이라니.

도대체 뭘까. P는 불안해졌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우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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