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3.
"비밀보관소에 가보고 싶어요."
C는 E에게 애원했다.
"안 돼. 넌 지금 영혼 인도 입문반이잖아.
아직 졸업도 안 했고."
E는 단호하게 다그쳤다.
"심화반까지 마치고 천상계와 지옥계
실습까지 수료해야 갈 수 있다는 걸 모르니?"
"알죠, 그래도 너무 궁금하단 말이에요."
C도 포기하지 않았다. 벌써 몇 번째인가.
인간계 기준으로는 100년도 더 되었겠지.
그들은, '그들'이라는 표현이 맞다면,
영혼 관리사다.
사람이 이승의 삶을 마치면
육신에서 영혼이 분리되는데
죽음이 처음인 대다수는
그 순간 혼란을 겪는다.
이때 영혼이 악귀의 손아귀에 이끌리거나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이끄는 존재가
바로 영혼 관리사다.
저승사자와 비슷한 것 같지만
그들은 영혼 정제라는 주요 역할이 있다.
두 존재는 패키지여행에서
운전자와 가이드 느낌이랄까.
영혼 관리사는 저승사자와 한 조를 이뤄
이승과 저승을 왕래하는 현장팀이 있고
영계에서 머무르며 업무 전반을 다루는
관리팀이 있다. E는 모든 분야에 통달해
업계에서 인정받는 베테랑이고
C는 새롭게 도입된 멘토 프로그램에서
E에게 배정된 교육생이다.
C는 입학 성적은 우수했지만
의문과 돌발 행동이 많아
특별히 E가 떠맡게 되었다.
"너 후회 안 할 자신 있니?"
E는 이제 진저리가 났다.
"네, 그럼요. 얼마든지요."
철이 없는 건지, 용감한 건지.
"너 왜 비밀보관소가 기피지역인지
생각 안 해봤니? 오죽하면 경력 많은
영혼 관리사들도 거기 있으면
일을 관두는지 말이야."
"그래서 더 알고 싶어요.
갈 때까지 계속 조를 거예요."
그래, 그렇겠지.
하긴,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E는 C에게서 자신의 지난날을 종종 보았다.
"알겠다. 가자 가. 어차피 이번에
정기 감사 때문에 가야 하기도 하고,
멘티 현장 교육도 내 업무니까."
어디 보자. 지금껏 인도했던
298만 9천6백3십8명의 영혼 중
비밀이 없는 경우는 없었단다.
이승에서의 시간이 길수록
비밀도 많았지.
슬프고 가슴 아픈 사연도,
추악하고 무시무시한 내용도 한가득인데...
순수한 영혼을 영계로 보내기 위해
모든 비밀을 떼어 내 정제하고 담아내는 아카이브,
망각의 강을 건너지 못하는 영혼들에게는
꼭 거쳐야 하는 곳이지.
그중에서도 '천 개의 비밀이 내는 소리'라 부르는
특별구역 S를 네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난 경고했다."
"괜찮아요. 정말 기대되는걸요."
저 녀석, 진짜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