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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an 02. 2024

어느 금요일 밤

2024.1.2.


숨소리가 심상치 않다.

여태 좋아졌다 나빠졌다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불안하다. 오늘인가.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가녀린 그믐달은 구름에 덮여 빛을 잃었고

공기는 미세먼지를 품어 흐느적거렸다.

작은 방 2개에 화장실 딸린 거실.

어른이 제대로 눕기 힘든 공간이지만

그래도 거실은 거실이지.

이 좁은 공간에서 당신과 함께 한

식사가 몇 해이던가.

이제는 혼자서 앉고 서기도 어려운 몸,

매일 전화하는 자녀들은 이제

알아듣기 힘든 말소리에 슬퍼했지.

지난 주말에는 막내아들 부부가 찾아와

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숟가락을 자꾸 놓치고 입을 제대로

다물지 못하는 당신을 보며

목메어 밥을 제대로 못 먹더군.

그래, 그랬을 거야.


당신을 보살피는 건 힘들지 않아.

피곤한 거야 자고 나면 되니까.

마음은 그렇지 않더군.

당신을 보낸다는 건...

차라리 당신과 입원했을 때가 좋았어.

몸은 불편했어도 뭔가 차도가 있는 듯했으니.

조직검사에 CT, 심전도까지.

바쁜 일정에도 꿋꿋이 버텨주며

같이 희망을 키워왔는데...


항암제는 참 많은 걸 앗아갔지.

건강해도 모자란데 염증에 구토에

몸이 급속도로 나빠졌으니.

내가 치료받았을 때보다

차이가 너무 커서 힘들더군.

10년 전 위암 판정을 받고

위를 다 덜어냈을 때도

당신이 참 잘 보살펴 주어서,

당신 덕분에 완치 판정도 받고

내가 살았다오.

이제는 췌장암에 걸린 당신을

내가 돌보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날까.

먹기 힘들어 영양제를 맞아도

힘없이 처져 있던 모습에

미안하고 슬펐어요.

아직 전이가 안되었으니

약물로 암세포를 줄이자던 주치의.

어느 정도 호전되었을 때

그냥 수술이라도 하지,

계속 고집부리며 조금 더, 조금만 더를

외치다가 어느덧 약을 바꿔도 소용없고

암세포가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하며

퍼져나가자 포기해 버린 빌어먹을 자식.


막내아들 결혼식 때 쓸 가발이 집에 왔을 때

서럽게 울던 우리 모습, 다행히 식을 잘 치러

마음이 놓인다고 힘들게 웃던 당신 얼굴.

내 간절한 기도는 성의가 부족했나 보오.

당신은 자꾸 뭔가 보인다고 했지.

돌아가신 어머님 같다고.

아, 못난 사위라서 죄송합니다.


Y는 침대에 누운 K를 바라보았다.

슬픔과 고통이 뒤섞인 숨 가쁜 호흡.

Y는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두려움의 시간은 가까워졌다.

아이들에게 연락했지만

당신이 보고 갈 수 있을까.

Y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K의 손을 잡았다.

차갑게 부어오른 손가락,

슬프도록 부드러운 감촉.


그동안 나 때문에 참 고생 많았소.

잘한 것 없던 내 삶에서 가장 잘한 건

당신을 만난 거라오.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까지

잘 키워주어서 고마워요.

내가 당신에게 참 많은 빚을 졌는데

그건 내가 나중에 당신을 다시 만나면

다 갚을게요. 그때까지 잘 있어야 해요.

고맙고 사랑해요.


가녀리게 움켜쥔 K의 손에 힘이 빠졌다.

숨소리도 고요해졌다.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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