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친절한 James
Jan 01. 2024
불안은 불행의 씨앗이다.
의심과 불신은 서로를 키우며
사랑을 차츰 깨트려 갔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언제부터 그랬던 거지?
생각할수록 혼란스럽다.
어지러운 마음의 틈새마다
짜증과 분노가 뜨거운 수증기처럼
끓어 올라 새어 나오고 있었다.
H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놀란 이불이 화들짝 펄럭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H의 배우자 I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잘도 자는군.
자는 척하는 건 아니겠지.
H는 슬쩍 I의 얼굴을 들여다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아서라, 자든 말든 어쩔 텐가.
H는 눈 감고 한숨을 내쉰 뒤 방을 나왔다.
거실 소파에 앉을까 하다가
작은 방에 가기로 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책상 의자가
지금은 더 나을 것 같아.
아, 먼저 물 한 잔 마셔야겠다.
H는 책상에 엎드렸다가
고개를 들었다.
두 손을 펴 걱정보다 무거운
머리를 받치고 팔꿈치를 책상에 괴었다.
그래, 그때부터였어.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새해를 맞이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좀 가라앉을 무렵 H는 친구들을 만났다.
학창 시절부터 삼총사와 달타냥으로 불릴 만큼
막역한 사이였지. 이제는 다들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아 키우고 있다.
결혼하며 뿔뿔이 흩어져 얼굴 보기 힘들었는데
그때는 모처럼 다들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부부 동반 모임은 처음이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쾌활한 Q가 분위기를 주도했고
말수가 적던 J도 웬걸 맞장구를 잘 쳤다.
D는 잘 웃었고 그의 아내도 적극적이었다.
Q의 아내와 D의 아내는 학교 선후배 사이라 했다.
분위기는 좋았다.
딩크족인 Q부부와 신혼 세 달 차 J부부,
2살 쌍둥이 남매를 친정에 맡기고
이틀 자유시간을 얻은 D부부 모두
즐거워 보였다. 다른 세 부부와는 또 다른,
아직 아이가 없는 7년 차 부부인
H와 I도 물론 좋았다.
1차 레스토랑에 2차 노래방,
3차 일본식 술집까지.
신입생도 못 따라올 열정으로
다들 신났다.
그들은 깊은 새벽이 되어서야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단톡방을 만들어 다들
사진도 올리고 글도 남기고 했지.
모임이 끝나고 몇 주 지났을 무렵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H만의 착각이었을까.
I의 회식과 야근이
눈에 띄게 늘었다.
원래 그런 부서인 건 알지만
아이를 갖는 문제로
심하게 다툰 뒤로는 더 그랬다.
내성적이고 야외 활동도 별로
좋아하지 않던 I였기에
H는 처음에 걱정도 되고 미안했다.
공교롭게도 요맘때 녀석들은
결혼 생활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어릴 때부터 H는 주로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말을 전하지 않는 성격이라
다들 H에게 고민 상담을 하곤 했다.
중간에서 친구들 오해도 풀어주길 여러 번.
그러고 보니 I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좀 짓궂은 Q는 그렇다 해도 J도 그랬었네.
D는 원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지만
걔도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따로 연락해서 만난 건 아닐까.
유독 I에 대해 궁금해하던 게 궁금하다.
설마... 그럴 리가.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일아야. 암 그렇고 말고.
그런데 얼마 전부터 I도 친구들에 대해
이것저것 묻어보곤 했지.
단순한 관심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군가와 바람을 피웠을까.
아닐 거야. 착각일 거야.
그런데 자꾸 의심이 가.
직접 물어봐야 하나.
긴 밤이 느리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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