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친절한 James
Jan 03. 2024
바람이 분다.
푸른 바람은 하늘 높이 걸려 펄럭인다.
햇살 머금은 새하얀 구름들은
자박자박 산책 중이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위로 향해
두리번거리다가 눈을 감는다.
신청한 라디오 사연이
방송되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결을 문지르는 10월의 감촉이
피아노 선율보다 감미롭다.
바람의 숨결을 이토록 오롯이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분자들의
미세한 간질거림.
사람의 감각으로는
셀 수조차 없는
원자의 진동과 공명.
모습은 달라도 재료는 같은 우리.
모든 물질은 에너지라고 하던데
너와 나를 가르는 경계도 언젠가는
의미를 벗어두고 하늘로 돌아가겠지.
눈을 떠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숨을 들이켜려면 먼저 숨을 비워야 하고
숨을 비워내려면 우선 숨을 들이켜야 해.
이 당연한 걸 지금껏 왜 몰랐을까.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아왔던 걸까.
당신은 마당에 있다.
열두 발자국 정도면 끝에서 끝으로 닿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 속에서 머무르며
담아내는 생각과 느낌은 결코 작지 않다.
하늘을 우러르며 사계의 변화를
몸소 받아낼 수 있는 사색과 휴식의 무대,
성소이자 놀이터인 마음의 전당 속에서
당신과 당신의 배우자가 그토록 바라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즐기는 여유.
집과 사람, 그리고 자연은
공생한다는 걸 알았다.
감사한 선물이다.
여름은 지나갔고 가을이 한철이다.
마당 한쪽에 마련한 화단은
어제 내린 비로 생기가 돈다.
어디서 날아온 코스모스는
제법 맑은 꽃잎을 틔웠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당신 아내를 위해
작년에 심은 맥문동은
생글생글한 자태를 뽐냈다.
딸기처럼 귀여운 천일홍은
송이송이마다 변함없는 사랑이 피었고
가을 노을빛을 닮은 마리골드는
당신들에게 꼭 찾아갈 행운을 품었다.
화단 맞은편에는 서로 모양이 다른
정원 디딤돌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마당을 총총총 가로질렀다.
그 틈새를 메우는 푸른 잔디 사이로
어린 시절 꿈꾸던 동심이 간질거렸다.
천천히 마당을 돌면
속도 편하고 마음도 여유로워져.
전에 살던 테라스 딸린 집도 좋았는데
여긴 우리가 직접 지은 집이라 더 정감이 가네.
이제 따뜻한 차 한 잔 할까.
당신과 당신 배우자는 마당 한쪽의
나무 테이블에서 티타임을 갖기로 했다.
각자가 좋아하는 허브차에
어제 만들어 둔 약과를 곁들여
느지막한 오후를 음미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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