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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Dec 30. 2023

알몸이 된다는 느낌

2023.12.30.


쏴아! 쏟아지는 물줄기 앞에 알몸이 된다. 

하루를 열고 닫을 때,

피부를 가리던 옷가지를 훌훌 벗어두고

차갑거나 미지근하거나 따듯한 물의 장막,

물방울들의 향연 속으로 몸을 던진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알몸으로 샤워를 한다. 

이때 알몸이 된다는 느낌이란

겉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꾸밈과

감정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속에서 차오르는 상쾌함을 마주하기다.

물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고

스스로 필요해서 원할 때 그렇다. 

인파 가득한 연말연시에

광장이나 백화점 한가운데에서

샤워를 해도 그럴 수 있을까.


알몸은 부끄러움과 이어진다. 

치부를 드러낸 알몸뚱이는 숨겨져야 한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 나무나 풀이 없는

민둥산처럼 벌거숭이가 된 몸은

놀라운 조롱거리다. 보통 그렇다. 

아기는 아직 알몸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은 언제부터 알몸과 

부끄러움을 연결시켰을까. 

성경에서 최초의 인간은 아담과 하와다. 

에덴동산에서 살던 그들은 뱀의 유혹에 빠져

금단의 열매 선악과를 먹고 낯부끄러워한다. 

그전까지는 벌거벗고 살았지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알몸이 된다는 느낌은 썩 좋지 않다. 

명예와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일이기에. 

그럼에도 스스로 알몸이 된 이야기가 있다.

초콜릿으로 유명한 고디바(Godiva)다. 

그녀는 11세기 영국의 실존 인물이다. 

고디바는 런던 코벤트리의 영주였던

레오프릭 백작의 부인이었다. 

당시 농민들의 삶은 혹독한

세금 징수로 매우 힘들었다. 

고디바는 남편에게 세금 감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오히려 기괴한 제안을 받는다. 

알몸으로 성을 한 바퀴 돈다면 생각해 보겠다고.

16세 그녀는 이를 실행한다. 

알몸으로 백마에 올라 성을 도는 날,

백성들은 감사와 존경의 의미로

모든 창과 문을 닫았다. 

그러나 한 사람, 재단사였던 톰은 

커튼을 열고 그녀를 엿보았는데

그 죄로 눈이 멀었다고 한다. 

여기서 '피핑 톰(Peeping Tom)',

훔쳐보는 톰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이런 알몸도 있었네. 

내가 그렇게 숭고한 알몸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옷을 입고서도 좋은 사람이 되도록

애쓰면서 살아야겠다.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지 않고

슬픈 천명 속에서도

잃은 것을 찾으며 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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