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8.
"A님, 방금 호텔 로비에 도착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빨리 오셨네요.
제가 10분 내로 내려갈게요."
내가 좀 일찍 오긴 했지.
그래도 도착하면 연락 달라고 했으니.
늦는 것보다는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게
훨씬 나으니까.
S는 통화를 마치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거래가 잘 될 듯하다.
모든 게 무사히 성사될 것 같은 기분.
이런 예감은 거의 틀린 적이 없다.
아침에 알람 없이도
제시간에 일어난 게 얼마만인가.
좋은 징조다. 그런 날은
하루 운수가 괜찮았다.
최소한 S가 기억하는 날들은 그랬다.
"시간이 좀 남았는데..."
S는 로비를 둘러보기로 했다.
여기는 수려한 전망과
쾌적한 서비스로 유명한 곳이다.
세계 정상급 인사들도 종종 머물며
인기를 드러냈고, 각종 모임과 행사로
1년 365일이 성수기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는
호텔 로비였다.
이미 고인이 된 화가는 물론이고
현재 왕성하게 활동 중인 예술가의
작품들이 조화롭게 전시되어 있다.
회화와 조각은 물론
사진과 영상물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웬만한 갤러리 못지않다.
새로 부임한 CEO가 예술경영을 내세우며
특히 공들인 부분이라고 한다.
절반 정도의 작품은 투숙객이 아니어도
볼 수 있기에 로비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숙박하는 사람만 입장할 수 있는
특별 전시관에는 얼마 전 타계한
J.S. 앨리엇의 유작이 있다고 들었다.
S 연봉을 500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겨우 살까 말까 한다는데...
S는 미술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이 작품은 언젠가 보고 싶었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 정도일까 궁금하긴 했다.
아무튼 한 번 여기 와보면 좋겠다 했는데
마침 A가 이곳을 접선 장소로 선택하다니.
이곳도 결코 우연은 아닐 거야.
일이 잘 풀릴 거란 일종의 계시지.
이따 만나면 전시관에
같이 갈 수 있는지 물어나 볼까.
로비를 거닐다 보니 어느덧 10분이 지났다.
S는 다시 로비 맞은편 계단 쪽으로 향했다.
이제 곧 내려오겠군. 잠시 뒤
단정히 빗어 올린 머리에 옅은 밤색 코트,
반짝이는 뿔테안경을 걸친 A가
2호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사진보다 호감이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두 사람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