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9.
"오랜만이구나."
이 새롭고도 편안한 느낌.
풍경은 바뀌었지만
마을이 품고 있는 선은 그대로다.
아, 물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길도 바뀌었다. 있던 산은 깎여나가고
아파트 단지가 길게 늘어섰다.
내가 살던 흔적도 기억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이질적인 인상 속에서도
익숙한 느낌, 공기가 품고 있는 기억,
정(情)이라고나 할까.
U. 내가 태어난 마을이다.
그 당시에는 읍이었고 군이었던 동네.
시내를 가로지르는 개천이 인상적이었지.
여름 장마철마다 범람해 길거리를
물바다로 만들며 넘실거리던 곳.
그때마다 개구리들이 폴짝거리곤 했다.
비 올 때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다보면 거친 흙탕물이
다리 기둥을 세차게 때리며 흘러갔다.
마치 쾌속선 타고 항해하는 기분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걸 보면
움직이던 게 멈추고 안 움직이던 곳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
그때가 그랬다. 별거 아닌데
마을 옛 풍경을 떠올리다가
생각나서 적어봤다.
'태어남'이란 말을 생각해 본다.
세상에 나왔다는 뜻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사람의 형태를 갖추어
어미의 태(胎)로부터 나옴을 의미한다.
또는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삶,
다른 환경에서의 시작 역시
새롭게 '태어났다'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 점에서 U는 이런 사회적 출생을
한 곳이다. 신체적 출생을 했던 곳은
사실 별다른 기억이 없다.
몇 번 찾아가 봤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내가 태어났던 병원은 소속 재단이 바뀌고
점점 성장하다가 상급종합병원이 되었다.
연혁에는 한 줄 기록이 있는데
당시의 모습은 만나볼 수 없겠지.
아무튼 오늘은 모처럼 U에 왔다.
근처에 일이 생겼는데 도착할 때쯤
취소가 되었다. 온 김에 생각나 들렀다.
지금은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왔다.
운동장 한쪽 약간 높은 공터에는
정겨운 플라타너스가 여전하다.
손바닥보다 큰 낙엽을
무진장 떨구던 키다리 나무.
어릴 적 먹던 과자를 한 봉지 사서
아삭거리는 추억을 한입 베어문다.
네 밑동에서 간식 먹고 뛰놀던 때가
며칠 전 같은데 이제 그 나이 때만큼 탄
자동차와 같이 왔구나.
언제 또 올지 모르겠다.
내가 태어난 마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