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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an 08. 2024

수평선에서

2024.1.8.


"바다다!"

그래도 감탄은 나오는구나. 

얼마만인가. 이토록 광활한 물결의 넘실거림.

잠시도 쉬지 않고 출렁이는 맨살을

아낌없이 해변에 쏟아내는 자취.

잊을만하면 눈앞에 떠올라

귓가를 간지럽히던 비릿한 파도소리.

다시 만났네. 참 반갑다. 

세월이 지나도 너는 그대로구나. 

시간의 마법을 용케도 피해 간

듬직한 수평선 앞에서 

힘을 얻고 눈물을 쏟던 날들이 떠올랐다.


새해가 밝았다.

남들은 산으로 바다로 첫 일출을 보러 

바삐 움직였다. B는 그런 것에 익숙지 않았다.

아무리 유명한 베스트셀러라도 

세간의 관심이 잦아들 때쯤 천천히 펼쳐봤다.

인기 넘치는 맛집이라도 시큰둥했다.

다른 이들이 하는 것들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모든 걸 하고 싶어 했고 

최소한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돌아보니 B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대중에 휩쓸리지 않고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한 다리로 세상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전국 곳곳에서 열린 신년 해맞이 행사도

슬슬 잊힐 무렵 B는 기차를 탔다.

해안선을 따라 사람들의 꿈을 실어 나르던

추억 열차는 다음 달에 운행을 그만둔다고 하네.

예약해두길 잘했지 뭐야. 

B는 으쓱하며 창가 좌석에 앉았다. 

도시와 산과 들을 지나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차창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사진에 담긴 그림 같다. 

창문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밖으로 눈길을 두는 순간의 모습이 찰칵,

B의 뇌리에 끼어들었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기나긴 수평선.

수평선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걸까.

눈에 보이는 임의의 선을 경계로

서로의 약속에 묶어둔 단어.

여기서 바라보는 수평선과

저 수평선 너머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수평선은 다른 걸까.

수평선 위를 걸으면 어떤 기분일까.

여기에서 그런 모습이 보이기나 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기차는 어느덧 역에 도착했다. 

B는 서둘러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인파들은 삼삼오오

썰물처럼 흩어졌다.

다들 바닷가로 갈 테지.

B는 걸음을 늦추고 발길을 돌렸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2층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5년 전 왔던 곳인데 아직도 잘 있다.

인테리어가 조금 바뀐 것 같은데,

색상이 조금 더 산뜻해진 느낌.

B는 음료와 빵이 담긴 접시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수평선이 잘 보이는 그 자리에 가야지.

머그잔을 수평선 위에 놓인 것처럼

각도를 맞춰 사진도 찍었다. 


짧은 식사를 마치고

B는 해안으로 향했다.

수평선에 가까워졌다. 

사람이 변하고 시간이 지나도

바다는 그대로였다. 

손을 바다에 담그고 

주먹을 쥐었다 펴본다. 

멀리서 꾸물거리던 수평선이

B의 손등을 간질거렸다. 

B는 한마디를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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