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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an 23. 2024

자정 무렵

2024.1.23.


"쿵쿵쿵."

또 시작이다. 

원인 모를 소리다. 

항상 이맘때, 자정 무렵에 그랬다.

며칠 동안 들리다가 한동안 조용했는데.

헛것이 들리나. 아니야, 분명 뭔가 있어.

위치는 천장 쪽인데... 

그런데 여긴 단층집이잖아.

다락방 같은 게 있지도 않고. 

부동산업자가 이 집은 아무런

문제없다고 했는데 

새빨간 거짓말이었어.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지.

그 히죽거리는 꼬락서니 하고는.

새빨간 립스틱도 아주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렸지.

집주인이랍시고 널브러져 있던 털보,

선심 쓰는 척 집값 깎아주는 시늉,

그게 다 이런 하자 때문이었어.

이놈의 사기꾼들, 다시 만나기만 해 봐라.

저 앞의 호수에 다 빠뜨려 버려야지. 

안 구해줄 거야. 튜브도 안 줄 거야. 

물 좀 먹어봐라 이놈들아. 

아유 정말!


O는 견딜 수가 없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다가 

자리에서 로켓처럼 솟아났다. 

가련한 마른 몸을 지탱하던 나무 의자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쾅", 그 소리에 O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스터리한 잡음도 눈 녹듯 사라졌다.

책상도 놀란 듯 말이 없다. 

하긴 너는 원래 별 말이 없었지. 

아무튼 뭔지 몰라도 쿵쿵이 넌 겁쟁이구나.

O는 의문의 1승을 거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O는 뭐 하는 사람일까.

매일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낑낑거렸다.

노트북보다 노트를 좋아했는데

그렇다고 작업이 더 효율적이지는 않았다.

아직 '작가'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작가 지망생'이 더 어울릴 듯하다.

여기저기 영역 표시하며 

싸돌아다니는 똥개처럼

백지 곳곳에 뭔가 써재꼈는데

뭔지는 이해가 잘 안 돼.

흩어진 종이 쪼가리는 한가득인데

제대로 이어지는 글은 찾기 어려웠다.

그런 걸 버리지 못하고 꾸역꾸역

상자에 모아둔 게 방구석에 한 짐이다.


O는 스스로 고귀한 일이라고 부르는 

글을 쓸 때 작은 소음도 견디기 힘들었다.

미세한 진동음조차 O에게는 폭격처럼

골을 때렸다. 그야말로 골 때리는 소리였다.

도회지의 삶은 O에게 고역이었다. 

교차로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릴 때면

온갖 차 소리, 말소리가 두개골을 쪼아댔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술주정뱅이 계부에게 맞아

고막이 다쳤을 때부터였나.

기역니은도 아직 서툰 나이였지만 

그날의 아픔은 지금도 생생했다.

O는 집이 무서웠고 가기 싫었고

엄마를 못 지켜준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런 엄마가 멀리 떠났을 때 

슬프면서 다행이었고 가슴 아팠다. 

그리고 두려웠다.


O가 고민 끝에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3달이 지났다.

도시와 멀지 않은 호수 마을, 

한적한 근교가 마음에 들었다.

차 없고 사람 없어서 좋군. 

끓어오르는 창작열을 마음껏 불태워야지. 

그렇게 정착하려고 온 곳인데 

자정 때마다 이렇게 시끄럽다니. 

O는 호수 끄트머리에 쪼그려 앉아 

검은 물결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머나먼 하늘에 작은 별 몇 개가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풍경, 

그래 오늘 글감은 이거다. 

O는 다시 일어나 집으로 들어섰다. 

이번만큼은 기필코

제대로 된 글을 쓰겠다는 각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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