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푼앓이, 라는 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자녀를 키우면서 새기는 교훈이다. 30% 부족하게. 밥을 먹여도 열푼 다 채워 배부르게 먹이지 말고 조금 부족한듯이 먹이라는 현명한 교훈. 가진것을 감사하고 소중히 나눌 줄 아는 아이로 키우라는 조언. 다 주고 싶은데 아이를 위해서 참아야하다보니, 부모 마음에 아픔이 넘쳐나서 '앓이'라고 했다한다. 서푼앓이. 물질로 채워질 수 없는 정신의 풍요로움은 비움에서 온다.
인내와 절제를 배우고 꽉차서 흐트러지지 않게, 내 아이를 사랑으로 그렇게 참아가며 지켜보고 싶다.
아이를 키운다는건 부모로 성장하는 일과 같은 의미니까.
무려 10년 전, 큰 아이 어릴 때, 블로그에 써둔 일기다. 넘치도록 주지 말고 절제할 수 있도록 키우자고 다짐하며 적어두었는데, 어느새 다 잊어버렸다. 잊고 지내던 이 말이 문득 떠오른 건, 어제 친정엄마와 나눈 대화 때문이다.
5학년 작은 아이와 자기 전에 침대에 누우면 둘 만의 애정행각이 시작된다. 두 팔 두 다리를 다 부둥켜 껴안기도 하고 정수리 냄새도 맡아보고 온 얼굴에 뽀뽀를 해주고 마지막으로 등을 쓸어주고 잠이 든다. 그야말로 자기 전에 온갖 사랑 표현을 다 하고 잔다. 전화로 이 얘기를 듣더니 엄마가,
"사랑도 속으로 표현하면서 키워. 겉으로 다 드러내지 말고."
라고 얘기해주셨다. 노산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바람에 아직도 초등학생인 아이 붙들고 예뻐라 하는 내가 엄마 보시기에 걱정스러우셨나보다. 워낙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성향을 지닌 딸이라, 조금만 덜 표현하고 더 깊어지라고 조언을 해주신다.
물론 단순히 애정표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육아에는 충분한 애정표현은 만큼 중요한 것이 분명한 원칙과 경계를 세우는 것이다. 지나쳐서 방만한 것보다는 모자란 듯 부족해야 소중함과 절제를 배워나갈 수 있다. 다 아는데, 알고 있는데, 이미 진작에 다짐했었는데, 잘 안될때가 많다. 원칙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약해져서 흐지부지 되기도 하고, 약속했음에도 유야무야 넘어가기도 한다. 늘 그렇듯 서푼보다 훨씬 더 많이 부족한 엄마다.
하지만 십 년 동안 내가 성장한 점이 있다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모자람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모자라도 괜찮으며, 모자람을 채우기보다 여백을 남겨두는 것도 좋다는 것. 그게 지난 십 년 동안 큰 아이를 키우며 마음에 새긴 지혜다. 그러니 부족한 점이 있어도 너무 좌절하지 말고 흘려보내자. 오늘은 서푼 모자란만큼 가벼워진 마음으로 아이 발가락 만져주며 잠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