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평소와 다른 초록색이 눈에 휙 들어왔다. 누가 또 화단에 식물을 버려놨다. 아파트 화단 안쪽에 화분이 덩그라니 놓여있다. 햇볕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물만 먹고 자라 비실비실한 상추와 때아닌 꽃을 단 봉숭아가 갑작스런 추위에 어쩔줄 몰라하며 이파리를 늘어트리고 있다. 그 앞에는 화단 꽃나무 사이에 있을 리 없는 고추가 매달려 있다. 그래도 그냥 쓰레기 버리듯 엎어놓고 간건 처닌 듯, 원래 거기 심었던 것 처럼 제대로 지지대까지 붙인 채로 버렸다. 아마 화분은 챙겨가고싶었나보다. 버려졌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가을 햇볕을 받아 마지막까지 익어가겠다는 듯, 고추는 빨개졌다.
유기견이나 유기묘만 있는게 아니라 유기식물도 있다. 집에서 물 주며 기르다가 귀찮아져서, 지저분해져서 저렇게 그냥 내다버린다. 생각해보니 이사철이다. 하루에 한 집씩은 이사 나가고 들어오는 중에 가져가기 애매한 식물들은 그냥 버리고 떠난 것 같다. 이렇게 버려지면 그 곳에서 저절로 무성하게 자라는 줄 생각하는걸까? 그 중 일부는 누군가가 다시 주워 집에서 기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말라 죽어 보기 흉한 쓰레기가 되거나 다른 누군가의 노고로 치워진다. 죽어버린 식물도 안타깝지만, 치우는 손길들에게도 미안하다. 타인의 노동력과 시간에 멋대로 기대는 것은 기생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