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기억한 환상의 냄새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은 배우나 가수 같은 연예인이 아니라 막내고모였다. 7남매 중 막내답게 애교와 살가움이 넘쳤고, 작고 아담한 몸매에 희고 고운 피부, 오똑한 코와 큰 눈이 돋보이던 미인이었다. 게다가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이어서 방학 때 마다 할아버지가 아니라 고모가 보고 싶어 시골에 가는 날을 기다리곤 했다.
“너 어릴 때 할아버지 댁에 가면 바닥에 내려놓을 새가 없었어. 너 큰고모랑 막내고모가 하도 안고 업고 있어서.”
부모님이 자주 얘기하셨듯 고모들 사랑을 담뿍 받고 자랐고, 그만큼 나도 고모들을 많이 사랑하고 따랐다. 명절에 할아버지 댁에 가면 엄마 속도 모르고 고모랑 같이 있고 싶어서 더 있자며 운적도 많았고.
그러던 고모들이 차례로 결혼을 해서 할아버지 집을 떠났다. 명절 마다 내려가면 같이 놀아주고 피아노도 연주도 들려주며 간식을 챙겨주던 예쁜 막내고모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빈 방에 덜렁 남은 피아노를 혼자 뚱땅거려보았다. 쓸쓸하고 그리웠다.
몇 살 때 쯤 일까? 여느 방학처럼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고 있는데, 막내고모가 첫 아이를 데리고 할아버지 집으로 왔다.
“고모!”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얼마나 크게 소리쳤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하루종일 고모와 예전처럼 놀고 싶었지만, 고모는 예전처럼 반기고 놀아주지 않았다. 친정엄마 곁에서 산후조리 하러 와 있는데 자꾸 조카가 엉겨 붙으니 귀찮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이해가지만 그때는 내가 훼방꾼에 지나지 않는단 상상도 못하고 그저 옆에 붙어 있고 싶어 고모랑 아가가 지내는 건넌방을 자꾸만 들락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 나가 하루 종일 놀고 들어왔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지독하게 입맛을 돌게 하는 냄새가 가득 풍겼다. 은근한 단맛이 가득 느껴지면서 적당히 진하고 부드러운 감칠맛 나는 향, 소리보다 빠른 빛처럼 맛보다 향이 내게 먼저 달려 들어왔다.
안그래도 노느라 배가 고팠는데 맛난 냄새까지 풍기니 참을 수가 없었다. 냄새를 따라 방을 열고 들어가니 막 고모가 아기에게 무언가를 먹이고 있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고모, 나도! 나도 한 입만!”
고모가 웃으며 입에 한 숟갈 넣어 준 순간, 코와 혀 안에서 부드럽게 퍼져가는 마법처럼 풍부한 맛의 흐름! 맛있다는 말로 부족할 만큼의 감칠맛이었다. 코를 자극하던 향, 입안에 들어오던 순간의 촉감,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느낌 모두 지금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다. 시간이 흘렀어도 맛과 향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단 한 입, 단 한 숟갈 뿐 이었기 때문이다.
한 입 먹어보니 정말 맛있어서 더 달라고 졸랐는데 고모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머쓱한 마음으로 몇 번 더 졸랐지만 ‘나한테까지 먹일 양은 아니’라고 칼 같이 잘랐다. 음식가지고 차별당하는 게 제일 서러운 법인데, 사랑하는 고모에게서 거절당한 서러움과 충격이 말도 못했다. 게다가 고모가 나보다 더 사랑하게 된 존재 때문에 내쳐졌다는 상실감까지 더해져 그 날 그 한 숟갈은 어린 마음에 잊지 못할 맛과 향으로 남아버렸다.
뭐였을까, 그 날 고모가 내게 먹여준 음식은? 한 번 더 맛보지 못한 서운함과 아쉬움은 그 후로 오래 남아 환상의 맛, 환상의 냄새로 남아버렸다. 그 비슷한 냄새만 맡아도 그 날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다시 한 번 먹어보고 싶은 맛이 되었다. 무려 20년도 넘는 시간 동안. 그리고 그 비밀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풀렸다. 20년 쯤 지나서 그때 막내고모처럼 첫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면서.
준이를 낳고 6개월간의 모유 수유를 끝낸 후 이유식으로 넘어가 조심스럽게 재료를 추가해가며 먹이던 때였다. 채소만 먹이다가 처음으로 소고기를 넣은 이유식을 만들던 순간, 다진 소고기를 볶은 후 쌀가루를 넣고 끓인 죽에 참기름 살짝 넣자마자 풍겨오던 냄새, 그 냄새를 맡는 순가 비로소 추억 속의 환상의 맛, 그 냄새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 그건 돌 전 아기들이 먹는 소고기 이유식 냄새였다!
첫 이유식을 만들며 만난 추억의 냄새, 그 냄새를 맡자마자 어린 날 고모 방에서 한 숟갈 얻어먹던 그 순간으로 순식간에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이유식을 다 만들고 식기도 전에 서둘러 맛을 보았다. 아, 냄새는 그리운 그 날과 똑같았지만, 맛은 기억 속의 그 맛이 아니었다. 재료나 레서피 탓도 있겠지만 막내딸의 첫 아이를 위해 할머니가 들이신 사랑과 정성을 뛰어넘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저 짐작만 해본다.
그 무렵 소고기 간장 이유식을 만들 때, 내가 먹을 몫까지 양껏 만들어 두곤 했었다.
“준이가 그렇게 많이 먹어?”
남편이 놀랄 정도로 많이 만들어서 사실은 조금만 덜어 준이에게 먹이고 나머지는 내가 다 먹었었다. 커다란 숟가락으로 듬뿍듬뿍 떠서.
고모에 대한 상실감과 배신감이 진한 소고기 향으로 남고, 오래오래 끓이며 들인 할머니의 애정이 간장의 감칠맛으로 남은 이유식의 맛과 향. 열두어 살 무렵에 남은 서운함은 이제는 사라지고 없지만, 온 집안 가득 희미하게 떠돌던 안온한 이유식 냄새는 지금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