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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l 22. 2024

유품 아니고 이삿짐 정리중입니다

  드디어 부모님의 이사가 다음 달로 다가왔다. 20년 넘도록 한 집에서만 사신데다 두 분다 여든을 넘기셔서 이사가 많이 부담스럽고 버거우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언젠가 쓰겠지 싶어 모아두었던 짐들, 낡아도 고쳐가며 쓰고 있던 세간들, 차마 못 버리고 가지고 있는 추억들까지 가득 쌓여있는 상태라 이사 전에 전체적으로 치우고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겸사겸사해서 동생과 함께 토요일 오전 친정으로 출동했다.


  방 셋, 화장실 둘,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은 베란다가 있는 오래된 32평 아파트. 그 아파트에서 나와 동생들은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배우자를 만나 결혼도 했으며, 각자의 첫 아이를 데리고 조리를 했다. 아직도 집안 곳곳에 아이들의 낙서가 숨어있고 창문에는 아이들 작품이 붙어 있는 부모님 집. 커다란 12자 장농은 아이들이 이불 위에 올라가 놀던 숨바꼭질 장소였고, 그 좁은 부엌에서 엄마는 명절마다 음식을 차려 자식을, 사위와 며느리를, 손주들을 먹이셨다. 우리에게도 이런 의미와 추억이 가득한데 두 분 부모님은 오죽할까. 익숙한 환경이 바뀐다는 것도 편치 않으실 나이인데 정든 곳을 떠나 이사라니. 부모님께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안다. 게다가 손때 묻은 익숙한 세간살이와 낡고 오래되었지만 추억이 서린 물건들, 하찮아보여도 나름의 의미가 담긴 물건들을 정리하는 일은 몸도 피곤하지만 마음도 힘든 일이다. 각오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제일 먼저 든든하게 밥부터 먹었다. 


  숨을 죽이고 얌전히 누워있는 찐 호박잎과 양배추를 보자마자 허기가 올라왔다. 된장과 쌈장을 얹어가며 두 손으로 쌈을 싸서 정신없이 먹었다. 동생은 내가 언제 일어나서 밥 한 그릇을 더 떠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신의 밥에 집중했고, 나는 자리를 비운 틈을 누구도 못 알아챌 정도로 재빨리 밥을 더 퍼와서 싹싹 비웠다. 후와, 이제, 시작이다. 


  우선 거실부터. 장식장과 티비받침대, 신발장에서 못 쓰는 물건들을 다 꺼내버렸다. 유통기한이 몇 년씩 지난 약들, 썼는지 안 썼는지도 모르겠는 온갖 물건들, 요상하고 오래된 장식품들이 줄줄이 나왔다. 


 "언니, 윷놀이 할거야? 트럼프는?"

 "윷놀이? 꺼내봐, 제대로 들었어?"

 "어, 윷가락이 6개가 들었네. 이거 불길해. 버려."

 "이거, 네가 사왔냐? 테이블 매트랑 젓가락 세트. 중국여행다녀온 기념품같은데?"

 "내가 그런걸 샀겠어? 언니 아냐?"

 "난 중국에 간 적이 없는......아, 옛날 남자친구가 여행다녀와서 선물로 줬던거다."

 "버려!"


  엄마 살림이건만 두 딸이 더 신나서 마구잡이로 버려대는 동안 엄마는 안방 옷장과 화장대를 정리하셨다. 볼품없는 목걸이와 반지를 소중히 담는 어깨를 보니, 화려한 장신구 하나 없이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오신 엄마 인생의 무게가 고스란이 담긴 듯해 마음이 아렸다. 그 흔한 금가락지 하나 못해드려 죄송한 딸의 마음을 엄마가 눈치채기 전에 바삐 움직였다. 

 "안여사, 고무줄 늘어난 속옷도 다 버리시고, 이불도 무거운건 버려버려요. 도장이랑 통장도 따로 담아두고 사진도 한 군데 다 담으셔. 참, 장농 안에 보자기에 쌓인건 엄마 한복이라던데, 한 번 봐봐요. 못 입는건 다 치우자."

  그렇게 오래된 사진과 옷, 안 쪽에 숨어있던 보자기들이 먼지를 날리며 등장했고 '이건 또 뭐냐...'하시며 보자기를 풀르던 엄마가 '아이고 이게 여깄었구나!'하며 반색하셨다. 보자기 안에는 엄마가 아끼던 한복이 곱게 개켜진 채로 언젠가 다시 입혀질 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누워있었다. 엄마는 유물을 발견한 발굴단원처럼 하나하나 조심스레 한복을 펼치셨다. 


 "세상에, 이거 엄마 결혼할 때 너네 할머니가 해주신 거야. 연녹색 저고리에 다홍치마!" 

  지금은 보기도 힘들만큼 고전적인 빛깔을 은은하게 뽐내는 새색시의 한복! 팔순 안여사는 손으로 가벼이 치마를 훑으며 자랑하셨다. 

 "어머, 이거 망사아냐? 반짝이도 들은거 같은데? 그 옛날에 이렇게 야한걸 입었단 말야?"

 "이경자할머니도 참 신식이셔, 이런 디자인을 며느리한테 다 해주고말야."

  시시콜콜한 수다가 이어지는데, 그 밑에서 주황 바탕에 잔꽃무늬가 귀여운 한복이 보였다. 내 기억에도 남아있는 옷이었다. 얼른 꺼내서 "나 이거 알아! 엄마 이 한복 입었을 때 엄청 예뻤는데, 이건 버리지 말자!" 하고 외쳤다. 엄마는 '이건 정말 아깝다. 진짜 실크야. 요즘엔 구할 수도 없어.'라더니  튿어서 스카프로 만들어 우리에게 주시겠다며 따로 챙기셨다. 한복을 담는 엄마의 얼굴이 살짝 들떠보였다.

지금도 선명한 색감을 자랑하는 새색시 한복!


  다 치웠다 싶었는데, 밑에서 여러 번 접은 색한지가 나왔다. 뭔가 싶어 펼쳤는데, 청실홍실과 함께 한자가 먼저 보였다. 사주. 혹시, 설마? 그랬다. 엄마아빠가 결혼할 때 주고 받은 사주단자였다. 한자가 가득해 다 읽을 수는 없었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한자는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둘째 아들 성호 이미 성장하여 짝이 없더니.....처를 삼게 해주시니....'

  1972년 5월 30일.

   아.........내가 알지 못하는, 두 분의 역사를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떨리고, 설레서 그저 감탄사만 뱉으며 동생과 함께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50년 전, 젊었던 여자와 남자로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식장에 들어섰던 그때, 엄마와 아빠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그 시절을 회상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쌓여버린 시간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었을까.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쩌면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을 떠올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이나 젊은 시절 사진은 명절에 종종 꺼내봤었다. 사위나 며느리가 옛날에 이러셨군요, 하며 즐거워하고, 조금 자란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맞냐며 놀라워하는 날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사주단자는 동생도 나도 처음 봤다. 신기하다는 마음을 넘어 귀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조심스레 잘 접어 다시 싸두었다. 지금까지처럼, 엄마가 오래 간직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감상에 젖은 시간도 잠시, 이제는 부엌차례였다. 벗겨진 후라이팬, 녹슬은 그릇, 깨진 냄비, 낡은 플라스틱 그릇, 유행지난 무거은 컵, 변색된 숟가락.......버려야할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싱크대 상부장부터 하부장까지,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버릴것을 추려 내다놓고, 양념과 음식재료까지 깨끗하게 치우고 정리했다. 노인 살림이라 단촐할 것 같지만 아니다. 그간 쌓인 것들이 세월이 아니라 물건이었다. 구석구석에서 끝도 없이 물건들이 쏟아져나왔다. 한참을 버리고 비웠는데 보기에 티가 안난다. 아쉽다. 


  부엌은 이쯤 하고 베란다도 들여다봐야했다. 베란다 붙박이장안에 있는 오래된 짐들도 다 확인하고 선별해서 버렸다. 낡은 침구청소기는 뚜껑이 닫히지 않아서 쓰레기. 고장나긴 했는데 식혜만들때 써야하는 6인용 전기밥솥은 보관. 낡은 고기불판은 큰딸이 가져가서 처리하고, 캠핑용 고기불판(이게 왜 엄마집에???)은 작은딸이 가져가서 묻어버리기로 했다.  


  이렇게 하루종일 50리터 봉투 2개 가득 채워 버리고, 재활용 쓰레기는 박스로 여섯 번은 담아 버렸다. 큰 보자기로 싼 옷가지도 여섯보퉁이가 나왔고 낡은 장식장과 탁자는 일단 층계참에 두고 하나씩 내다놓기로 했다. 아직 방 두 개가 남아있는데 시간은 벌써 저녁 7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 머슴도 새참은 먹여가며 일 시킨대......배고파............."

  치울 힘이 안 남은 큰딸을 위해 아빠가 손수 팔을 걷어붇히고 부엌에 들어가셨다. 시판 둥지냉면을 김치냉장고에서 꺼내서는 후딱 4인분 냉면을 삶으신다. 그 옆에서 엄마는 김치를 썰고 식초와 설탕으로 양념해서 뚝딱 고명을 만드셨다. 아빠의 정성과 엄마의 손맛이 어우러진 냉면 한 그릇을 시원하게 국물까지 다 들이켰다. 식초와 겨자의 힘으로 뒷정리에 나섰다. 체력이 약한 동생은 절로 눈이 감긴다고 했다. 팔뚝 두껍고 살집과 먹성이 좋아 튼튼한 일꾼인 K-장녀는 밥심으로 남은 짐들을 옮겼다. 정리를 마치고 나니 9시 30분. 꼬박 12시간이 지나있었다.

 

이만큼씩  다섯 번은  더 갖다 버렸다


  이렇게 치우는 동안 몸이 고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나고 감사했다. 곁에 없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정리하는 시간이 아니라 새 집으로 이사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라서, 부모님과 동생이 함께 있어서, 같이 대화하고 서로 만질 수 있어서, 그러니까 이 모든 게 유품 정리가 아니라 이삿짐 정리라서, 같이 웃고 같이 나누는 시간들이라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이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부모님의 시간을 펼쳐보며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오늘 정리한 물건들과 새로이 발견한 기억들, 그 속의 시간들을 가만가만 그려본다. 젊었던 시절의 부모님과, 그 시절을 받아먹고 자라난 나와, 나를 쏟아부어 키우고 있는 내 아이도 떠올려 보았다. 마음 한 켠이 서서히 따스해졌다. 이삿짐 정리가 이렇게 애틋하고 다정하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ps -- 대문의 사진은 제가 입던 배냇저고리에요. 잘 싸서 집으로 가져왔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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