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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l 15. 2024

20년 넘게 초등교사를 하면 알게 되는 것

  인터넷에서 '변호사로 10년을 살다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라는 글을 읽었다. 많은 사람들의 소송을 맡으며 일반인들은 모르는 여러 업계의 다양한 일화들과 내막들을 알게 되었다면서 올린 글이었다. 인형뽑기기계에도 설정이 있다는거나, 무속업에도 트렌드가 있다거나, 코인으로 번 돈을 지키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이야기들이었다. 제일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고수입을 올리는 유튜버들이 정신과 치료를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였다. 악플과 관련해 그만큼 피폐해지기도 하고 관련해서 소송도 많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 분야건 한 분야에서 강산이 변할 시간만큼 일하다보면 남들은 모르는 일들을 꽤 많이 알게 된다. 변호사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직종이 아닌 경우도 그렇다. 일하는 내내 어린애들만 상대할것 같은 초등교사 조차도.


  경력 20년이 넘는 초등교사로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순자는 맞고 맹자는 틀리다'는거다. 진짜다. 나 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교사들이 성악설을 지지한다. 성악설을 믿게 되는 이유는 말그대로 아이 내면의 악함을 수시로, 자주, 많이 목격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교실은 무지와 미성숙이 가득한 곳, 거짓말과 시기 질투, 미움과 이기심 몰아치는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보통의 범주에 들지 않는 타인에게 얼마나 잔인한지, 타인의 상처에 얼마나 무감한지 겪을 때마다 불에 데인 것 처럼 쓰라리다. 많은 사람들은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 아이들을 순수하고 맑은 영혼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천사가 아니고 교실은 동화 속 세상이 아니다.


  사실 이는 가정교육의 부재탓일 때가 많다. 순자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예'를 배워야 하는데, 그 '예'를 가르치지 않아서 안그래도 악하게 태어나는 인간이 더 악해지고 있다. 너무 심한 비약이 아니냐고 마음 아파 하는 분들은 가족 안에서 만나는 자녀의 모습과 단체 속에서 경쟁하는 가운데 만나는 아이들이 드러내는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경험하지 못해서일거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교사들이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 성악설을 믿게 되었다고 고백하게 된 것은 결국 아이 탓이라기 보다 돌보지 않는 부모의 탓이다.

불과 물, 어둠과 밝음, 선과 악, 그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곳 - 교실


  두 번째 깨달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량한 아이들이 다수라는 점이다. 사실 자신의 권리만 내세우고 의무는 하나도 지지 않는 지금 청소년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회적 갈등이 생길지 가늠하면서 우리 사회가 망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자주 들린다. 틀린 분석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인 뉴스에 드러나지 않는 대다수 아이들은 이해와 존중을 배워가며 조금씩 자라고 있다. 어떤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존경받을 참 스승'과 '아동학대고소교사'로 갈려지는 현실이 서글프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힘을 내는 이유는 이 아이들을 보며 여전히 희망을 품기 때문이다. 역시 성악설이 맞다고 쓰게 뱉어도 나는 성선설을 믿고 싶어하나보다. 이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교사로 버틸 수 있을까. 선과 악으로 인간의 본성을 간단히 치부해버리는 것 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교실에서는 단순함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책에서 배운 것보다 현장에서 일하며 몸으로 알게 된 사실이 또 더 있다.  학교 밖 사람들의 생각보다 아이들은 교사보다 또래에게서 훨씬 더 많이 배운다는 점이다. 교실 안의 같은 반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교사보다 더 중요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도와주고 보살펴야할 동생이기도 하고, 경쟁하는 라이벌이기도 하며,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면서 동시에 두근거리게 하는 연인이 된다. 어디서 이런 존재를 만날까. 내 아이가 잘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내 아이의 친구도 소중히 여겨야한다.


  초등교사로 일하며 매일 같이 쓰는 속담도 생긴다. '콩콩팥팥'이다. 유전의 힘은 강력하고 공부머리나 재능은 타고 나며 부모와 자식이 따로 놀지 않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은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긴다는 뜻이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다르게 쓰인다. 부모가 콩이면 자식도 콩이고, 부모가 팥이면 자식도 팥이다. 단순히 부모와 자식이 닮는다는 유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육아솔루션 프로그램을 보면 느낄 수 있듯이, 문제아에겐 문제부모가 있고, 호부 밑에 견자 없다. 아이가 반듯하면 부모가 훌륭하고, 아이가 망나니면 부모에게 문제가 있다. 20년 경력까지 안 가고 4, 5년 경력만으로도 알게 된다. 

  

  그러고보니 교사가 아닌 사람들은 의외로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라는 점이다. 교사 연수에 참여하거나 학교 수업을 진행하는 외부 강사들의 수업을 참관하다보면 자기 지식의 깊이와 전달력은 완전 별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학별이나 자격증이 수업진행의 능숙함을 담보하지 않는다. 목소리톤, 시선처리, 강약조절, 분위기파악까지 다년간 가르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수업진행이 흐름이나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거나 흐트러지는 집중을 유도하는 것도 물론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학부모들을 포함해서 교사 외의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지식을 편집, 재구성하고 조직하는 능력, 거기에 더해져서 전달력과 아이들을 사로잡는 능력까지가 교사의 능력이다. 교사들끼리의 돈 못 버는 연예인이라는 농담이 단순한 우스개가 아닌 이유다.  



  20년 넘게 초등교사로 일했더니 남들은 잘 모르는데 알게 된 것이 무려 다섯가지나(!!!) 된다. 아쉽다. 무언가 남들은 모르는 무협비급이라도 하나 쯤 들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구석에서  PT체조나 뛴 기분이다. 내가 알게 된 것이라고는 이것 말고 온갖 절기나 공휴일, 국가행사와 경축일의 의미, 애국가 가사 4절, 또 뭐가 있나, 아, 좀 쓸모없는 능력이긴한데, 온갖 인터넷 밈과 유행어에 통달하게 된다. 아이돌그룹이나 유튜버, 인기 애니와 게임캐릭터까지 잘 안다. 


  매년 아니, 매달 바뀌는 새로운 유행들, 패션들, 인기아이돌들 까지 초등학교 아이들은 점점 최신 유행과 패션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소비하면 초통령이라고 불리고 부모들이 움직여서 자본까지 몰려든다. 좋은 일인지 걱정스러운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가속화되면 되었지 이 흐름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 덕에 아이들의 유행과 취향에 통달하고 오타쿠도 아닌데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대사와 게임 필살기를 외우고 있다.  중년의 교사로서 나이보다 젊게 사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또래보다 철없어 보일 수 있다는 단점도 된다.  


   30년 까지 일하고 나면 지금까지 알게 된 것 말고도 또 다른 많은 것들을 알게 되려나. 아직도 더 많이 알아갈 일이 학교에 남아 있으면 좋겠다. 부디 아픔과 냉소 말고 새로운 희망과 신비가 내게 오면 좋겠다. 더더 알아갈 때까지 오늘도 열심히 출근, 아니 등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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