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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l 01. 2024

사춘기와 갱년기가 붙으면

중1 딸이 자기한테 어찌나 뾰족한지, 사춘기라고 유세가 보통이 아니라며 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내보기엔 딸래미한테  꽉잡혀 사는 딸바보엄마인데, 저도 받아주다 받아주다 열이 받았다.


"아니, 사춘기하고 갱년기가 붙으면 갱년기가 이긴다매. 갱년기가 더 힘든거라고 방송에서도 그러던데, 콱, 이 딸래미 사춘기라고 찬바람 도는 데 말도 못하겠어 아주. 얼마나 받아줘야돼? 더럽고 치사해서 원. 삐딱하고 아주 지가 상전이야. 어휴, 힘들어 죽겠어."

"저런, 왜 그랬대니 늙은 엄마 힘들게. 어니(조카애칭)한테 엄마한테 지라그래. 사춘기는 꽃이 피느라 힘든거고, 갱년기는 꽃이 시드느라 힘든거니 얼마나 불쌍하니. 사춘기가 갱년기한테 져야 맞지. "

"뭐야 그게. 더 슬퍼. 꽃이 시드는 갱년기라니,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거잖아."

"맞는말이지 뭐. 시들어가는 변화를 겪는 중이니까 더 애처롭게 여겨달라고 딸래미한테 얘기해봐라."

"몰라, 더 서러워."


갑자기 자각한 자신의 노화가 상처됐는지 성내던 동생 목소리가 쑥 가라앉았다. 늙은 엄마의 서러움을 주고받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 나도 삐딱한 작은 아들 때문에 매일같이 짜증이 솟구치는데 마음을 모를까. 사춘기 아이들 키우는 늙은 부모는 허리보다 마음먼저 휘어졌다.


아들아, 딸아,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몸이 쑥쑥 자라고, 뇌도 재편성되는 생명력 넘치는 사춘기의 마음을 이 애미가 왜 모르겠느냐. 다 안다. 호르몬이 시키는 것인지 네 마음이 그런게 아닌것을.


하지만 얘야, 엄마를 보렴. 인생의 중반기를 넘기며 기력이 쇠하여 여기저기 삐걱대는 갱년기 엄마의 애절한 슬픔이 보이지 않니? 가여이 여겨다오. 엄마도 노화에 적응하는 중이란다.


그러니까, 엄마 열받게 하지 말고, 싸가지 없게 말하지 말고, 정리도 하고, 공부도 하고, 먹은 것도 제때 제때 치우라고 엄마가 번도 넘게 말했잖아, 안들려어!!! 



아오 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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