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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n 24. 2024

너의 외로움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적당히 불어오는 오후였다. 작은아이는 식탁앞에 앉아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며 쉬고있었고 큰아이는 낮잠이라도 자는지 조용했다. 무심코 작은 아이 맞은편에 앉아 아이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이같지만 코밑이 거뭇해지고 얼굴이 길쭉해진 것이 부쩍 청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들바보 엄마 눈에야 잘생겨보이지만, 또래 여자애들에게는 안 통하는 얼굴이려나, 아니면 성격의 문제인가, 아들은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


문득 이 아이의 연애관이 궁금했다. 학교현장에서 내가 목격한 바로는 요즘 아이들의 연애는 시작도 쉽고 끝은 더 쉽다.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사귀자고 하면 쉽게 사귀고 또 그만큼 쉽게 헤어진다. 연애가 사랑의 충만이라기보다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사이가 되는 것에 더 의미를 두는 아이들도 많다. 중학생이 되었으니 이런 말간 연애가 아니라 조금 진한 연애를 하게 될까? 호기심 반, 궁금한 마음 반으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윤아, 너를 좋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어도 네가 좋아하지 않으면 사귀지 말고,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귀면 좋겠다."

핸드폰을 보던 아이가 늘 그렇듯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그럴거야"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지만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사귀자고 하면 사귄대. 사귀다보면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데."

별 생각없이 꺼낸 말인데 아이의 대답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잠시 생각하더니 아이가 말을 이었다.

"그건 외로워서 그래."


아, 그렇구나, 그 마음이 외로움이구나. 외로워서 누가 손을 내밀면 덥석 잡기부터 하는거로구나. 그 마음을 너는 이해하고 있었구나. 아이의 말이 귀가 아니라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바람은 여전히 부드럽게 불어와 팔다리를 감싸고 머리카락을 살살 흔들고 있었다. 아까보다 바람이 조금 더 따스하게 느껴졌다. 아이에게 물었다. "그럼 너는 어때? 너도 외롭니?"


나를 마주보고 아이는 살짝 어색한 듯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웃는 건지 아닌지 어딘가 미묘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음...조금?"

"그렇구나, 우리 아들이 조금 외롭다고 생각하는구나. 그건 가족이나 친구로는 채워질 수 없는 외로움인가?"

"글쎄, 잘 모르겠어."


이 말을 끝으로 아이는 다시 핸드폰으로 눈을 돌렸다. 보던 영상을 집중해서 보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딘가 간지러운 듯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었다.

마냥 파충류같다고만 생각하던 아들이 어느새 커버린걸까. 밤사이 새 잎이 올라오듯, 아이가 자라는 순간을 목격한 기쁨이 차올랐다. 그리고 곧 쓸쓸해졌다. 아이가 지닌 외로움은 어떤 감정일까, 아이 몫의 외로움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걸까? 지금의 외로움과 앞으로 겪어낼 쓰라림들의 무게를 가늠해보자니 내 마음이 고요하게 흔들렸다. 알고싶지만 나는 다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겠지. 아이의 마음은 엄마에겐 언제나 풀 수 없는 신비, 지켜내고픈 아름다움, 부칠 곳 없는 연서다.


아이 어깨를 한 번 도닥이고 조용히 일어섰다. 여전히 조용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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