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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ug 12. 2024

저는 어깨뽕이 없어요

그래도 너는 나의 뽕

2주 전, 이틀 동안 문화예술교육관련 집합 연수를 들었다. 처음 보는 낯선 선생님들이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조별로 강의를 듣고 그룹활동도 열심히 하다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제법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그 중 옆자리 한 분이 알고 보니 나와 나이가 같았다. 근무지도 비슷해서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말하다보니 교집합처럼 서로 겹치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누구 알아요?","어머, 누구요? 알죠!", "세상에 지금 뭐한데요?" 이런 우연이 겹치다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열렸고, 뒤이어 서로의 호구조사가 진행됐다. 자식은 몇 이고, 몇 학년이며 어떻게 지내는지 등등, 대한민국 4050 중년 여인들 만남의 필수코스인 자식과 공부 얘기가 시작됐다.


사실 나는 물가로 끌고가도 물을 마시지 않는 아들만 두어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왠만하면 자녀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딱히 할 말도 없다. 아들이 얼마나 어이없는 짓을 했는지, 뭘 얼마나 먹었는지, 엄마 속을 어떻게 뒤집었는지는 가끔 말하지만, 즐겨 말할거리는 아니다. 돈이 없으니 돈 얘기도 못하고, 남편이 지위가 없으니 남편 얘기도 할 거리가 없다. 처음 만난 사람하고 나누기 좋은 화제라고는 날씨, 직장, 연예인 얘기가 제일 만만한데, 상대방이 먼저 자식 얘기를 꺼냈다. 이런. 어쩔 수 없이 상대방 얘기를 들으며 적당히 맞장구만 치려고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누구나 부러운 아들이었다. 이야기 하는 스스로도 자신의 '어깨뽕'인 아들이라고 말하는 게 하나도 얄밉거나 고깝게 들리지 않았다. 쇼팽을 연주하고 학교 축구반 스트라이커며 학생회장인 아들, 성적도 내내 최상위권이라 학교에 상담가거나 학부모 모임에 나가면 웃으면서 '누구엄마'라고 말하면 다들 감탄사를 뱉게하는 아들, 고등학교 들어가서 공부안해 속썩이더니 고3 되어 정신차리고 스스로 공부해서 무사히 SKY 진학한 아들, 건강하게 제대하고 외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나가있는 아들. 아들 얘기를 하는 엄마 얼굴이 어찌나 해사하던지. 아들 낳은 중전의 표정이 저렇겠구나 싶었다.


 "진짜 이 아들이 제 어깨뽕이었거든요." 양 손을 어깨 위에 올려 위로 한껏 치겨들며 말하는데 전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사를 듣는데 질투같은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비슷한 구석이 하나라도 있어야 열등감도 들고 하는거지, 차원이 너무 다르니 감탄만 나왔다. 그런 아들 키운 엄마답게 아들 얘기를 물으면서 조언을 해주려고 하니 대화가 이어질리가 없었다. 등급얘기도, 대학 얘기도, 학원 얘기도, 어느 하나 아들 얘기는 없었다. 마디로 급이 달라서. '정말 좋겠어요, 아드님이 너무 멋지네요', 이런 리액션만 한 가득했더니, 살짝 애잔한 눈빛으로 "아들은 또 공부하면 집중해서 무섭게 하니까, 기다려봐요."라는 무난한 멘트를 남기고 대화를 마쳤다.


아마도 나는 저런 어깨뽕은 갖기 어렵겠지.

저렇게 확신에 차서 자식 자랑을 하는 날이, 내게 없을 수도 있겠지.

내 자식이 남들보기에 번듯한 사회적 성취를 이뤄내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내 아들은 편의점에서 물건을 하나 사고 나와도 꼬박꼬박 인사를 하고, 엄마가 화를 내면 미안하다고 와서 안아주며, 자기 손보다 작은 고무장갑을 찢어먹으면서도 설거지를 한다. 간식을 살 때 꼭 동생 것도 챙겨서 사오고, 가끔 뵙는 할아버지를 두 팔 벌려 꼬옥 안으며 인사하며, 엄마 손을 잡고 산책도 한다.


누군가처럼 커다랗고 높은 어깨뽕은 아니지만 내게도 어깨뽕이 있다. 버섯마냥 작고 귀여운 뽕들이 여기저기에 뿅뿅 솟아있다. 팽이버섯처럼 작은 것도 있고, 표고처럼 큰 것도 있다. 모르지, 어느 날엔가 엄지손톱만한 느타리 하나가 산처럼 우뚝 솟아버릴지도. 그러면 나는 내 어깨뽕을 따서 맛있게 볶아서 사람들과 나눠먹고싶다. 냠냠냠. 어깨에 큰 뽕이 안 달리게 해도 괜찮다. 내 아들은 내게 그 자체로가 커다란 뽕이니까.     


(버섯치곤..좀 큰가요? 장마철 화단 구석에 생기는 흐물흐물한 버섯말고 이쁜 버섯입니다!!)


요런 버섯 느낌으로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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