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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ug 19. 2024

꽃사슴, 전국대회에 나가다!

너는 나의 금메달

광복절이었던 지난 주 목요일, 큰 아들은 3박4일 일정으로 전북 익산으로 출발했다. 초중고 통틀어 처음으로 체험학습까지 내면서 떠난 일정이다. 아들은 이 날을 위해 지난 두 주간 필사적으로 몸무게를 줄였고, 방학동안 우리 가족은 휴가나 여행도 떠나지 못했다. 아들이 유도대회 출전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국. 두둥 - 


"유도대회?"

아들이 처음 대회 얘기를 꺼낸건 올 봄 쯤이었다. 기술을 좀 더 익혀서 한 번 나가보라고 관장님이 말씀하셨다고 했다. 작년 10월 부터 유도를 시작했는데 대회라니? 그때는 학기중이기도 하고, 체대 진학할 것도 아닌데 무슨 대회인가 싶어 무심히 흘려버렸다. 그 후로 대회에 대한 얘기는 없었지만, 꾸준히 유도를 하며 건강해지는 아들을 보니 한 번쯤 대회를 나가보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번 여름방학에. 


8월 16일부터 18일까지 익산에서 전국 생활체육 유도대회가 열렸다. 무려 '백제왕도' 익산이란 이름이 붙은 대회다. 참가요건에 '엘리트선수등록'을 하지 않은 선수들이라고 고지되어 있는 순수하게 유도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대회다. 그렇다해도 제대로 선수등록을 하고 안전 및 관련 온라인 교육도 이수해야한다. 7월 29일까지 참가 신청을 하고 3박4일간 숙식을 포함한 회비도 입금했다. 그리고 체중감량 소식이 날아들었다. 100kg 미만 체급으로 출전해야하니 무조건 그 이하로 살을 빼야했다. 안그러면 출전을 못할 수도 있다고. 아들은 그 후 2주 동안 탄수화물을 끊고 무려 9키로를 감량하며 99.33kg으로 공식계체를 통과했다. 


살 뺀 얘기는 https://brunch.co.kr/@joahn102/468


생각보다 참가자가 많아 놀랐다. 무려 6개 매트에서 3일 동안 내내 시합이 진행됐다.


광복절로 몸과 마음도 뜨거운 목요일, 도복과 3박 4일간 지낼 짐을 챙겨 아들을 집을 나섰다. 대회는 금, 토, 일 3일 간 치뤄지지만 대회 전날 공식계체가 있어 15일에 출발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부터 40대 중년 아저씨,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20대 누나까지 한 차에 타고 무려 4일 동안 함께 지내야한다. 또래 친구들 사귀는 것도 힘들어 하는 아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첫 날 첫 시합에 나가야하는데 그 중압감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관장님 얼굴도 본 적 없고 연락한 번 받은 적도 없는데 믿고 맡겨도 괜찮은걸까? 시합에서 지면 어쩌나 긴장된다는 아들만큼 나도 속으로 온갖 걱정을 다 끌어안고 있었다.  



드디어 대회날. 나는 아침부터 아들의 메세지를 기다리며 수시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다. 대한유도회, 익산, 유도, 등등의 검색어를 넣어가며 어떤 소식들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내 생각보다 체육관도 크고, 참가선수들도 많았다. 같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만나면 어떤 마음이 들까? 설렐까 긴장될까? 아무 경험도 없는 나는 별별 상상을 하며 검색을 계속했다.


혹시나 첫 판에서 우리 아들이 이기면 어쩌지. 32강부터랬던가, 네 판 이기면 금메달이라 그러던데, 한 번은 이기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하며 초조하게 아들의 소식을 기다렸다. 그리고 10시 30분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딱 한 글자였다. 


"짐"


아, 졌구나. 그 순간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진 것 처럼 내 마음이 무너졌다. 경력이 오래되지는 않았어도 열심히 준비한 뉴비의 화려한 데뷔는 현실에선 없었다. 8,9 등급이 서울대 합격하는 기적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인정한다. 양심도 없지. 이제 일요일까지 우리 아들은 뭐하며 지내나. 핸드폰만 하며 내내 놀고 있을까 걱정이 됐다. 그 와중에 틈틈이 아들의 메세지가 도착했다.


- 엄마, 나 이긴 선수 잘하는 선순가봐. 나 다음에 30초 이내로 한 판승으로 다 이겼어.

- 그 선수가 금메달이야.

- 근데 지금 생각났는데 흰띠가 나밖에 없어.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이 이럴까. 아들의 문자를 보고 현실을 깨달으며 욕심을 버릴 수있었다. 그렇지, 완전 초짜가 경험하러 온거지, 더 바라면 안되지. 이어 아이가 다친 곳이 없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아무런 부상없이, 까진 곳 하나 없이 인생 첫 대회를 마친 게 어디냐 싶었다. 몸으로 부딪히며 자신의 한계를 깨달아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일까. 아이를 많이 응원하고 격려해주자는 마음이 퐁퐁 샘솟았다. 검은띠를 따고 다음 대회에서 첫 승을 거둬보자. 아들에게 목표라는 게 생겼을까?



어찌저찌 대회가 모두 끝나고 일요일 오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나흘만에 만나는 아이 얼굴은 밝고 환했다. 어딘가 껍질이 벗겨진듯한 환함이었다. 계체 끝난 저녁부터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실컷 먹어대서, 하루에 1키로씩 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델리만쥬가 다시 호빵이 되어버렸다. 계속 놀고 먹은 거 아니냐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아니란다. 계속 경기장에 물 나르고, 밥 먹을 때 테이블 세팅하고, 설거지 하고, 고기굽고, 애들 돌보고, 엄청 열심히 일했단다. "관장님이 나 엄청 부려먹었다니까" 말하는 아이 얼굴은 이미 웃고 있었다. 하긴 전 날 저녁에 통화하는데도 같은 방 쓰는 초등학생 동생이 벌레 잡아달라고 불러서 금방 끊었었다. 즐겁게 잘 놀고 왔구나. 대견해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얼마 전, 유도다녀온 아들이 쑥쓰러워하며 말했다.

"관장님이 나보고 생긴 건 곰인데 속은 사슴이래."

"뭐? 사슴? 그렇지, 우리 아들 꽃사슴이지. 어떻게 아셨대? 역시 관장님, 사람을 제대로 보시네. 이제부터 우리 아들은 꽃사슴이야, 아 밤비라고 부를까?"

아들이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 온가족이 다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는 놀리지 말라며 온 몸을 비틀었지만, 나는 사슴이라는 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정말 여리여리하고 다정한 아이, 곱고 순한 아이다. 진짜 사슴같은 내 아들. 아직은 멀었지만 언젠가는 매트 위에선 사자가 되면 좋겠다. 크앙!


아들이 받은 사인. 다음 날은 안바울 선수가 왔었는데, 줄이 너무 길어 못 받았다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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