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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Oct 25. 2024

드문드문 10월 일기

1.

중국집에 혼자 들어가 짜장도 짬뽕도 아닌 우동 시켜 먹는 나란 사람,

단무지 한 접시 더 리필하고 국물까지 다 먹는 나란 사람,

음, 참 좋다.


2.

가을맞이 환경구성을 했다. 교실 뒤 게시판에 나뭇 가지 그림을 출력해 붙이고 칭찬의 말을 적은 가을나뭇잎을 붙인다. 아이들에게 나뭇잎을 나눠주면서 내 이름을 적은 나뭇잎도 슬쩍 내밀었다. 아이들은 귀찮아하면서도 몇가지 적어주었다. 읽다 기가막힌 문구를 하나 발견했다. 

'샘은 살찐게 아니에요. 귀여운거에요.'

너는 평생 적게 일해도 많이 벌거다. 이 아름다운 아이야.


3.

밥 먹는데 남편이 일론 머스크의 화성이주계획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꺼냈지만 결국은 이런 세상이니 열심히 공부해야한다는 잔소리로 흘러갈 것 같았다. 평소에도 음모론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서 이번에도 참 쓸데없는 이야기를 믿는다 싶었지만 그냥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내가 죽기 전에 인류가 화성에 가서 사는 게 말이되냐? 생각하면 밥을 입에 넣는데, 순간 딱밤을 맞는 정도의 가벼운 충격이 왔다. 내가 살아생전 한국여성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는걸 볼거라고 생각해봤을까? 그런 날이 올거라고 상상이라도 해봤던가? 기대도 안한 일들이 이렇게 벌어지기도 하는데 까짓 인류가 화성에 가는 걸 못 볼일이 또 뭐있을까 싶었다. 암만 뭐든 가능할 수도 있지. 열심히 고개 끄덕이며 남은 밥을 먹었다. 한강 작가님 덕분에 또다시 도파민이 폭발하는 게 느껴졌다.


4.

친정에서 얻어온 고구마를 일주일간 잘 후숙시킨 후 에어프라이기에 구워먹었다. 바스켓에 가득 넣고 오랜 시간 들여 맛나게 구운 고구마를 접시에 담아 식탁위에 올렸다. 아이들은 모짜렐라치즈와 버터를 곁들여 우유와 먹고, 남편과 나는 폭 익은 김치를 찢어 같이 먹었다.

보드랍고 달달한 군고구마에 다정한 네 식구의 대화가 곁들여지니 뜨거운 껍질을 까면서도 웃음이 세어나온다. 이 계절은 탄수화물이 가장 맛나는 계절. 밤, 고구마, 단호박에 감, 사과, 배까지 마음도 몸도 포근해질 수 밖에 없다.

두세 개 먹었다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접시가 비었다. '엄마 다이어트 한다며  왤케 많이 먹어!' 작은 아들이 외치며 하나 남은 고구마를 집어갔다. 올해도 열심히 고구마를 구워야할거 같다.



5.

12주 동안 매주 1번 듣고 있는 도서관 수업이 있는 날이다. 퇴근하며 버스를 타고 바로 도서관에가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수업을 듣는다.

대개 근처에서 김밥을 사가거나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는 편인데 항상 부족하다. 어째서 김밥 한 줄, 컵라면(그것도 왕뚜껑인데!!)하나로는 배가 차지 않는걸까? 이게 1인용 식사가 되나? 두 개를 같이 먹어야 먹은 느낌이드는 내 배가 이상한걸까?

 식당에서 제대로 혼밥을 하면 꼭 졸아서 곤란하고, 졸지 않으려고 대충 먹으면 또 집에가서 늦은 야식을 먹게된다.

오늘은 편의점에서 큰 삼각김밥과 포켓몬빵, 바나나까지 사서 음료수와 먹었더니 좀 속이 차는것 같다. 강의실에 들어가니 오늘따라 쌀과자와 청포도사탕이 있다. 두 봉지 먹고 믹스커피까지 마시니 수업이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등따시고 배부르고 좋구나아 싶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곧 시작인데 졸지만 말자. 제발!



6.

아파트 공동현관을 나서는데 하얀 입김이 보였다. 갑자기 쌀쌀해진다더니 겉옷을 챙겨입길 잘했지싶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한결 낮아진 온도와 햇살의 밀도를 느낄 수 있다. 한반도에 가을이 실종됐네, 여름 지나면 바로 겨울이 오네 사람들의 불만과 걱정이 가득하지만 지구는 착실히 태양주변을 돌아 머리꼭대기로 떨어지던 태양빛이 느슨하게 비켜서도록 만들었다. 햇살은 한결 옅어졌고, 옅어진 만큼 깊고 느슨하다. 온기는 옛날과 달라도 길어진 그림자와 햇살은 확실한 가을의 그것이다. 분명,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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