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부터 시작하는 문장수집
청춘에게는 청춘의 문장이 있다. 청춘에게 어울리는, 청춘이어서 어울리는, 청춘을 청춘이게 하는 문장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작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이고,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도 생각난다. 젊은 날 한 번쯤에 다이어리 한 켠에 사랑에 관한 달콤하고 두근거리는 아포리즘이나 싯구들을 적어본다거나, 따라서 다짐하게 하는 명언이나 문장들을 책상앞에 붙여둔 적도 있을거다. 청춘에게는 문장이 어울린다.
오십에는 무엇이 어울릴까? 재테크, 부동산, 입시, 노후대책, 연금, 건강검진.......
사는데 필요했고 움켜쥐어야 했던 단어들 말고 희미하나마 빛이 되어줄 문장이 오십 이후의 삶에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젊은 날, 나는 참으로 어리석었다. 속 빈 강정이라는 말이 더이상 적절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빈약하고 처량한 안쪽대신 바깥쪽을 치장하기 급급했다. 그렇게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어 살다보니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철근이 누락된 아파트처럼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렸고, 나의 흔들림은 가족의 불안으로 이어졌다. 부실시공으로 무너지기전에 보강공사가 필요했다. 뒤늦게 심리상담도 받아보고 약물도 오래 먹었다. 심리서적도 탐독했고, 과거와도 마주하려 애썼으며, 미약하지만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되찾았다. 내 문제를 마주하고 나니 이제는 나를 위해 노력해야했다. 허술하고 얄팍한 나를 세우기 위해 찾은 것이 글과 책이었다.
조금씩 나를 글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내 안의 것들을 채울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기는 나를 먼저 비워내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고여있던 것들, 머물러 썪어가던 것들을 발견했고, 진흙처럼 엉겨붙어 있던 것들을 털어낼 수 있었다. 제대로 게워내고 싶었지만 언어는 너무 차갑고 고고한 벽이었다. 제대로 쓰지도 못한 채 글쓰기의 어려움만 절감했다.
그 무렵, 세상의 수 많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내 독서는 문장을 읽는 것 보다 활자를 읽는 것에 더 가까웠다. 필사를 해보고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과정들을 거치면서 문장의 힘을 실감해갔다. 분유만 먹고 살던 아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는 단계같았다. 한 권 두 권 독서목록이 쌓여가고, 독서분야가 넓어지면서 감동과 감탄도 깊어갔다. 그렇게 책에서 만난 문장들이 내 안에 들어와 몸 속 구석구석에 불을 켜주었다. 읽을수록 내 안이 환한 불빛으로 채워지는걸 알 수 있었다.
빛은 내 안에만 있지 않았다. 아름답고 찬란한 언어들이 머리위에서 쏟아질 듯이 빛나고 있었다. 계속, 계속, 더 많이, 읽고 싶었다. 읽고 덮으면 끝이 아니라, 노쇠한 뇌세포가 가물가물하게 놓쳐버리는 단어와 문장과 그 순간의 감회를 잊지 않고 붙들어매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문장들을 할 수 있으면 새기고 싶었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다. 서툴고 조잡하더라도 내 손으로 적어보려한다. 내 안에 불을 밝혀준 문장들을, 젖먹이 같았던 내가 걸음마를 시작할 수 있게 해준 문장들을.
연약한 중년인이 남은 삶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도록, 남은 삶이나마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이십의 청춘만이 아니라 오십의 중년에게도 문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