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약국 아저씨
폐결핵으로 5년 동안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고 기적같이 살아 나와 우리 곁에 와 주신 엄마는 정말 감사했다.
12살의 나의 삶에 하루종일 기침하며 누워 계셔도 엄마라는 존재 자체는 내게 너무 큰 안정이었다.
퇴원하신 엄마와 우리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를 와서 달동네 언덕의 작은 방 한 칸 얻어 모여 살게 되었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당시에는 쌀이 상당히 비쌌었다. 그래서 굶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거의 매일 수제비와 칼국수로 끼니를 이었다.
그리고 친척분이 하시는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만들려고 잘라낸 빵 껍데기와 부스러기들을 말려서 한 자루씩 우리 집에 갖다 주었다. 그 빵껍데기는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식량이었다.
바싹 말려졌지만 그 끝에 묻어 있는 시큼한 어떤 맛들이 처음 맛보는 것이었고, 살짝 달콤하기도 해서 맛나게 먹었었다.
어쩌다 아버지가 월급을 받는 날이면 지난달 외상값을 다 갚고 다시 쌀을 외상으로 사가지고 오셨다.
그 날 만큼은 화려하게 쌀밥을 먹는 날이었다.
그런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엄마랑 같이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고, 온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모여 살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에 엄마의 생신이 다가왔다.
기침을 하시며 폐 한쪽 만으로 숨도 가쁘게 쉬며 살아가는 엄마를 위해 생일 선물을 사려고 그동안 모아둔 모든 동전을 다 꺼냈다. 꽁꽁 숨겨둔 돼지 저금통에 500원이나 되는 동전이 모였다.
그래서 그 모든 동전을 들고 초등학교 근처 놀이터에 앞에 있는 약국에 들어갔다.
“아저씨 헤모글로빈 500원어치 주세요”
모든 동전을 약사 아저씨가 서 계신 약국 탁자 유리 위에 다 놓았다.
“ 아고야! 왜 헤모글로빈이 필요하니? “
“ 네! 엄마가 아프신데 헤모글로빈이 필요하다고 들었어요. “
“ 아! 그랬구나. 여기 내가 헤모글로빈 영양제를 3개월짜리 한통을 줄 테니까 엄마 갖다 드려라.
근데 엄마가 어디가 아프시니?”
갑자기 여자 어린이가 500원을 주면서 혈색소의 이름을 대며 달라고 하였을 때 당황하셨을 만도 한데..
전혀 표시도 내지 않으시고 내게 어머니의 상황을 물으셨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 약사 아저씨에게 또박또박 다 말해드렸다.
약사 아저씨는 들으시더니 다음에 꼭 아빠를 모시고 오라고 신신 당부 하셨다.
나는 행복하게 큰 헤모글로빈 영양제 한통을 들고 엄마의 생일 선물로 드렸다.
그날 아빠와 엄마는 깜짝 놀라셨다.
비싼 헤모글로빈 영양제를 내가 어떻게 샀는지? 돈은 어디서 났는지? 물으셨다.
“ 아고야 이 비싼 것을 오백 원에 갖고 오다니, 그분은 천사 약사님 이시구나 내가 내일 인사드려야겠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 약이 500원 주고는 살 수 없는 약이었다는 것을…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물어본 것이 그 약사님에게 부담을 준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한동안 그 약국 앞을 지나갈 수가 없어서 되도록이면 돌아 다른 길로 다녔다.
그런데 며칠뒤 아빠는 부끄러워 안 가고 싶어 하는 나를 억지로 데리고 약국에 가셨다.
나는 옆에 앉아 있었고, 두 분은 한참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나올 때는 또 여러 가지 약들을 챙겨 주셨다.
그 이후로 그 약국 아저씨는 우리 가족과 상당히 친해졌다.
그리고 아버지가 해외 근로자로 나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도와주셨다고 한다.
우리가 월세를 못 내고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을 때 자신의 집 뒤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집을 싼 가격으로 우리 가족이 몇 년 동안이나 살게 해 주셨다.
놀이터 옆 약국 아저씨는 우리 가족에게 진짜 헤모글로빈 같은 분이셨다.
나는 500원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헤모글로빈 같은 천사 같은 약사님을 만난 것이었다.
어린 시절 만났던 한 사람의 따뜻한 도움은 내 평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려 주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하늘아래 살고 계신지 모르지만, 천사 같은 약사 아저씨는 영원히 내 마음에 남아 있다.
헤모글로빈 약사 아저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