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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Mar 12. 2024

소금에 절여져야 하는 이유

삶을 사랑하는 방법

길거리 작은 코너에서 몇 포기 안 되는 배추를 신라면 박스 위에 진열해 놓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초점 없는 눈길로 쳐다보며 앉아 계신 나이 많으신 할머니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자석에 끌려가는 못처럼 그 할머니에게로 끌려갔다.


할머니는 육지에서 온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무엇인가 열심히 말씀하시는데..

내가 아는 모든 제주 방언을 총 동원해서 통역하건대 아마도 당신이 직접 기른  유기농 배추라고 사라는 말인 것 같았다.  

눈동자에 고인 눈물이 바람결에 눈가의 주름을 따라 볼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기만 해도 가슴으로 이해가 되는 대화를 잠시 나누고, 겉 이파리가 푸릇푸릇하다 못해 뻣뻣한 배추를 두 포기씩이나 샀다.


할머니 배추는 푸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뻣뻣하기도 하고 벌레가 먹다가 남겨놓은 구멍들이 군데군데 있어서 직접 길러 낸 유기농 배추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배추를 소금으로 간을 하기 시작하면서 밭에서 자유롭게 자랐던 배추의 뻣뻣한 아우성들이 들리는 듯하다.


뿌려진 왕소금에 배추의 빳빳하게 살아 있는  기운힘이 빠질 즈음에 배추 잎은 부드럽게 숨을 죽이겠지..

맘대로 숨 쉬고 맘대로 뻗치던 기운들이 점점 한 줌 소금에 적응을 하게 되겠지.

온 피부에 억지로 쑤시고 스며드는 짠 소금에 얼마나 쓰렸을까!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간이 잘 배인 배추에 갖가지 양념들을 넣어  잘 버무리면, 배추는 여러 양념들어우러또 다른 이름의 맛있는 김치가  될 것이다.




배추가 김치로 변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데, 내가 어떤 맛난 무엇인가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소금이 내 살에 뿌려지는 순간, 그렇게 빳빳하게 세우며 찾아가던 나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 같았고, 아니! 나의 모든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으로 몸부림쳤었다.


배추가 배추로 계속 남아 있게 된다면, 언제 인가 배추는 말라 버리거나 썩게 될 것이고, 아니면 외롭게 홀로 밭에 살다가 시간이 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배추가 무엇으로 변화되기 위한 첫걸음은 소금에 절여지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그 절임이 있은 후에 다른 양념들과 버무려져  맛난 어떤 음식이 되는 것이다. 성숙한 변화의 시간을 만난 후에야 드디어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의 에도 무엇엔가 절여져야 할 시간을 여러 번 만났을 것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 갑자기 소금이 뿌려지면 내재되어 있던 방어기제의 폭풍우 같은 갈등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결국은 불순물들이 하나씩 튕겨 나오게 되고 그래서 부드럽게 변한 성품들은 다른 이 들 에게 여유 있게 반응하게 되 상황들을 성숙하게 수용할 줄 알아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멋진 인생 살아가게  할 것이 분명하다.


소금에 절여져야 하는 이유는 다양한 양념들과 어울려 삶에 멋진 작품들을 만들며 살기 위해서 이다.

만약 소금이 아닌 더러운 물로 절여진다면 과연 배추의 삼투압작용은 배추가 원래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 조차 다 썩어지게 되었을 것이고, 결국은 먹을 수 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고, 또한 냄새가 고약한 쓰레기로 버려지게 되었을 것이다.


중년을 넘어선 나의 인생은 무엇으로 절여졌는지 깊이 생각하게 한다.



                변하지 않는 진리와 생명의 소금으로 우리의 삶이 잘 절여지길 바란다.



우리 안에 겨우 숨 쉬고 있던 속사람이 그 진리와 생명의 소금으로 인해 깨끗하게 절여지고 새롭게 생기를 얻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배추로 태어나 여러 가지 형태의 음식으로 변해 버린 배추처럼 우리는 태어나 무엇과 어울려 어떤  살고 있는 것일까?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깨끗한 소금에 우리의 속 사람이 절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과정을 넉넉히 누릴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의 생명 사랑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여유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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