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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Mar 26. 2024

수단, 비상착륙

비행기 오래 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아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일을 마치고 이집트의 카이로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비행기가 탄자니아를 지나고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함신바람이 분다고 방송이 나오고 안전벨트 하라고 여러 번 방송이 나오는데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함신은 사막에서 50일 동안 부는 사막의 모래 바람의 이름이다. 이 바람이 불 때는 정말 온 천지가 모래색으로 변한다.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세미한 모래가 목으로 코로 마구 침범하는데 정말 괴롭다.

이런 상황을 사막에 조금 살았던 경험으로 잘 알기에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나는 세 사람이 앉는 좌석의 가운데 좌석에 앉았다. 내 옆에 통로 쪽에는 서양 남자분이 앉으셨고, 창문 쪽으로는 수단 여자분이 앉으셨다. 비행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계속 하니 나는 구토가 나올 것 같아 머리를 앞 의자에 기대 숙이며 안정을 하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또 방송이 나왔다.

곧 수단 카르툼 공항에 내려서 사막의 모래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이해해 달라고 하는 기장의 안내 말이었다.


옆좌석의 아주머니는 자기는 수단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사막의 모래 바람이 시작될 때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안전한 결정이라고 좋아하셨다.

사막의 바람이 불 때는 너무 강하고 모래가 날아들기 때문에 더욱더 비행하기가 위험할 것이다. 나도 내심 안정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 비행기는 안전하게 수단의 카르툼 공항에 내려앉았다.


기내 안의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기 시작했고, 승무원들도 어리둥절하니 군데군데 서서 같은 말만 하였다.

일단 승무원들은 기내 앞으로 나가고 조금 있다가 에어컨도 멈춘 것 같았다. 기름냄새와 사람냄새가 어울려 이상한 냄새가 가득하였고, 밖에서 불어대는 모래 냄새까지 기내 안에 자욱했다. 가끔 흔들릴 때마다 마음깊은 곳에서 절규하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는 작은 등만 켜져 있는 상태로 어두컴컴하게 시간이 지나갔다.

안전벨트를 하고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은 정말 고문이었다.

갖고 간 책을 읽으려고 해도 비행기가 흔들릴 때 구토 할 것 같았던 느낌이 계속 올라오고, 냄새도 나고 덥고 정말 답답해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 그냥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지나가는데 내 옆좌석의 신사분이 화가 나셨는지 큰소리로 승무원을 불렀다.

한참 있다가 승무원이 왔다.

그는 큰 소리로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승무원은 비상착륙이라고 모래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비행할 것이라고 말하고 미안하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사실 승객들의 안전이 중요하지 불편한 것이 무엇이 중요할까라고 생각했지만 이 사막바람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술렁이는데 조금 있다가 승무원들이 참고 있는 승객들을 위해 조금 오래된듯한 딱딱한 케이크와 티를 한잔씩 제공해 주었다.

나는 승무원이 준 작은 케이크가 올려진 종이 접시와 찻잔을 받아 들고는  속이 좋지 않아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고민하고 있었는데, 내 옆좌석의 여자분이 내가 안 먹을 거면 자기가 먹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반가워하며 드시라고 건네 드렸다. 그 수단 아주머니는 고맙다고 하시면서 아주 행복하게 티와 케이크를 먹었다.

그리고는 내게 웃으면서 이야기하신다.


"저는 사실 남쪽수단 사람입니다. 우리나라가 긴 시간 전쟁 중이고 살기 어려워 친척의 도움으로 남아공에서 잠시 일을 하는 기회를 얻었지요. 그 기간을 다 마치고 다시 이집트로 친척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나는 비행기 타기 전에 감사 기도를 했답니다.

내가 사는 남쪽 수단은 전쟁으로 인해 많이 가난합니다. 나도 겨우 친척의 도움으로 요하네스버그에서 일자리를 구해서 일 년 일한 것도 감사하고 또  이번에 비행기를 타는 것은 제 평생에 두 번째라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 타는 것이 너무 좋아 일찍 공항에 나왔고 한참 기다리면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 머물게 하고 케이크도 커피도 다 무료로 서비스받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니 얼마나 행복한지요. 이 시간이 지나가면 또 이런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내 생애의 두 번째 비행기 타는 날 당신 옆에 앉아서 케이크도 두 개 나 먹는 행운을 얻었잖아요.”


기내에서 8시간째 기다리는 우리 모두는 땀에 절어 짜증도 많이 났었는데, 이 수단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내 앞줄 사람들도 그리고 내 뒷줄 사람들도 다 조용히 듣는 것 같았다.


가장 짜증 내고 힘들어하던 내 옆의 그 신사분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 둘을 쳐다보며 한마디 거든다.


"당신 둘이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네요. 저는 독일 사람입니다. 이런 경우가 저는 처음 이랍니다. 너무 황당하고 기가 찹니다만, 당신의 이야기에 갑자기 케이크가 더욱 맛있네요."

라고 하며 웃었다.


독일 아저씨, 한국 아줌마, 수단 아줌마 우리 셋은 소곤소곤 서로 소개도 하며 조금의 여유를 누렸다.


우리뿐만 아니라 기내의 모든 승객들이 모두 답답하고 찜통 같은 비행기 안에서 미소가 빨갛게 변할 만큼 땀을 뻘뻘 흘리며 서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자리에 앉을 때는 서로 앞만 보고 앉았었는데


어느덧 우리는 사막의 모래바람 함신 때문에  8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
같이 머물며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친구들이 되었다.


드디어 사막 바람이 멈추어 다시 에어컨이 켜지는데 기내의 모든 사람들은 와! 하며 박수를 쳤다.


그렇게 사막 모래 바람을 피하고 카이로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는 모두 큰소리로 박수를 치며 서로 격려했다. 그리고 기장과 승무원들을 위해서도 감사박수를 쳐 주었다.


8시간 동안의 비상착륙, 힘들고 지루했을 시간에 그녀의 감사의 고백이 한 스푼의 소금처럼 모든 상황을 간이 딱 맞는 아름다운 에피소드로 변하게 하였다.


그 이후로 나는 비행기 탈 때마다 그 수단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비행기 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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