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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May 21. 2024

담쟁이덩굴

인생의 사계절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짙은 초록으로 담장을 타고 자라나는 담쟁이덩굴에게는 가장 화려한 계절인 것 같다.


모든 초록의 세포가 구석구석에서 살아나고, 큰 손바닥 만한 잎새들이 파릇파릇 자라난다.


사계절 내내 생명력이 있었겠지만 이 계절만큼은 정체성이 분명하게 살아나는 시간이다.


더군다나 아무리 큰 사이즈의 벽이라 할지라도 손바닥처럼 생긴 이쁘고 작은 잎들이 연결되어 자라나 서로  높은 벽을 따라 차근차근 올라가는 모습은 장관이다.


지난겨울에 만났던 배싹 말라 차가운 벽에 붙어 있던 그 줄기에서 이렇게 크고 짙은 초록의 잎이 자랄 것이라고 는 상상도 못 했었다.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날에는 벽에 더 바싹 붙어 있어야 했던 그 초라한 모습을 기억한다면 지금의 이 모습을 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폭풍우가 불던 그 겨울밤에는 어떻게 그 추위와 바람에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었을까?


겨울에는 아주 작은 최선의 가느다란 모습으로 숨을 쉬고 견디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작아진 모습에 절대 기죽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피어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맘껏 멋진 초록의 모습을 펼치는 자신감이 정말 멋지다.


힘들었던 시간들이 계속 나의 기억에 깊이 내장되어 어느 날 드디어 펼쳐도 되는 때 가 왔지만 마음의 끝자락에 숨겨져 있던 어두웠던 그림자에 사로 잡혀  현재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조차 인정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었다.


이제는 세월이 지나, 젊은 날에 하고 싶다고 갈망하며 외쳤던 것들을 드디어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왔건만, 추웠던 겨울기억 때문에 담쟁이덩굴처럼 자신 있게 초록색으로 그 봄의 계절에도 머뭇거리며 피어나지 못했었다.


그리고 몸의 어딘가 아프기 시작하면 나의 모든 삶의 영역에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많아졌고, 내일의 방향성조차 마구 뒤틀려 지금 열정적으로 달리던 길조차도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지금은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낸 시간들의 다양한 색을 누리며 천천히 걸어야 하는 인생의 가을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담쟁이덩굴처럼 '이제는 피어야 할 시간이야'라고 말해주면 바로 담대하게 피어나는 그 특성을 닮고 싶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행동일 것이고, 자신 안에 내재된 가능성을 신뢰한 행동일 것이다.


찌그러져 눌어붙어있어야 할 때도 있고, 활짝 피어날 때도 있고  이 모든 것이 담쟁이덩굴의 정체성인 것처럼 내 인생의 모든 것들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이 될 것이다.


이제는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멋진 생명의 정체성을 누리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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