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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May 28. 2024

갑상선 종양

20년 지기 친구

지난 몇 년간 나는 그 친구를 잊었었다.

처음에 그 친구를 발견했을 때는 그리 반갑지 않았던 존재였다.

그 친구는 원하지 않았지만 같이 살 수밖에 없는 친구이다.


오래전 이집트에서 살았던 시간에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아프셔서

하나뿐인 딸인 나는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


어린 시절부터 아프셨던 어머니이기에 나는 선교사로 살면서도 항상 어머니를 향해 레이더가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대학병원에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많은 것은 정말 내 삶에 가장 큰 축복이었다.


해외에서 사는 친구를 위해 나의 친구들은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병원을 갈 때마다 친절하게 잘 도와주었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큰 대학병원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안전하게 그리고 빨리 진료를 받으셨었다.


그날도 친구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진 어머니를 응급실에서 입원절차를 밟아주고 있을 때 다행히 나는 도착하여 다음 과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


매일 차근차근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데 친구가 내게 한국에 온 김에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권유를 했다.

굳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갱년기의 시기이기에 나는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갑상선 종양이 발견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악성 같다고 수술을 하자고 하셨다. 그렇지만 이집트에 있는 남편에게 연락을 하고 현재 입원하신 어머니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갑자기 악성종양이라는 단어가 너무 생소했고, 그 단어와 연관된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떠올랐다.


평생 폐 하나로 숨을 우리 보다 두 배나 빠르게 쉬며 살고 계신 어머니를 병원에서 돌보며 보호자 침대에 누워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다.

십 대인 두 아이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아파서 울며 며칠 동안 드라마를 여러 편 썼다.


그리고 어머니가 퇴원하고 난 후 아는 분의 연결로 국립 암센터에 다시 진료를 받으러 갔다. 그냥 수술하기에는 너무 급한 것 같고 그래도 조금 더 큰 병원에서 확인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조직 검사를 하고 난 후 생긴 것은 악성인데 아직 사이즈가 작으니까 지켜보자고 하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초음파와 조직 검사로  20년째 갑상선 종양을 지켜보며 돌보고 있다.


20년이 지난 어제도 의사 선생님에게서 같은 말을 들었다.

초음파 상의 결과를 가리키시며 의사 선생님은

 "가장 안에 있는 이것은 악성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겉에 둘러싼 조직은 조직 검사 상에 양성으로 나옵니다. 좀 더 지켜보지요. 참 신기하네요. 이제는 조직 검사도 힘드시니 3년에 한 번씩 하지요"


악성의 성질을 가진 갑상선 종양이 이렇게 주위의 좋은 세포들에 둘러싸여 아주 자라지도 못하고 잡혀 있는 기적의 상황이 내 몸 안에서 20년 동안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이 상황 자체가 기적인 것을 모르고 매일 거울을 볼 때마다 목을 바라보며 그 종양을 의식했었다.


어떤 때는 그런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냥 확 수술하면 안 되나?라고 생각했었다.


매일 건강하게 살면서도 깊은 마음에는 난 갑상선 종양 폭탄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종양이 없다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잊어버릴 수도 없고, 그냥 수술할 수도 없고...


그렇게 20여 년을 살다 보니 어느덧 갑상선 종양이 내 삶에 모든 시간을 함께 하는 친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새 익숙하게 되었는지 이번에 하는 조직 검사는 부담이 되지 않았다. 모처럼 나를 찾아온 친구와 같이 병원을 가서 접수를 하고 친구는 가까운 바닷가에서 차 마시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후딱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반창고를 목에 붙이고 커피숍으로 갔다.


20년 동안 같이 살아온 갑상선 종양이 이제는 내 삶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친한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삶에 여러 여정을 같이 이겨내고 살아내고 있는 갑상선 종양이 고맙기도 했다.


이 갑상선 종양 때문에 나는 병원을 정규적으로 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몸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나의 몸을 조금씩 잊지 않고 돌보며 살게 해 주었다.

이 모든 것을  친구처럼 같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인생인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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