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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Jun 05. 2024

사자와 곰 그리고 뱀

예쁜 선교사  


사람들은 누구나 다 사자와 곰처럼 무서운 트라우마의 상황들을 많이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 트라우마로 만들어진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항상 방어기제의 갑옷을 껴 입고 살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에 활발했던 우리의 성격이 시간이 나 성장하면서 하나하나 사라지고,

우리의 존재 의미 또한 세상이 만들어준 상황 속에서 영원히 피해자처럼 두려움 속에서 수동적으로 반응하며 살아간다.

우리를 위협했던 상황들 때문에 결국 우리 가치관과 개념들이 많이 변해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충격적이었던 상황을 소화하지 못하는 영원히 크지 않는 작은 아이가 되어 두려움들의 감정 안에서 숨어 살아간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맞설 수도 있을 만하건만 그 작은 아이는 그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아니 있는 것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아마도 이쁜 선교사였던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중동에서 살면서 여자가 혼자 다니는 것이 위험한 경우가 많았기에 혼자 밖을 나갈 때마다 긴장을 피할 수 없었다.

늘 조심하였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많은 남성들의 눈길을 나는 소화 해야 했고, 때로는 지나가는 척하며 건드리거나 심하게 따라붙는 경우도 많았다.  

아마도 작은 동양인 여자인 내가 어디를 가도 신기하게 그들의 눈에 튀었나 보다.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남성에 대한 분노도 문제였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올라오는 슬픔과 수치가 나를 온통 사로잡아 이렇게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마음깊이 분노가 차 올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는데 그날 읽게 된 구절이 바로 아모스 5장 19절이었다.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우리의 삶에 나타난 사자와 곰 은 무사히 피했지만 결국 뱀이라는 존재에 물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주 짧은 구절인데 의미가 깊었다.

차근차근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적인 움직임을 잘 살펴보니 그 뱀의 존재가 어떤 것이며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갖게 된 부정적인 감정과 정서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반복적으로 깊이 영향을 주는 것들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부정적 습관들이 패턴이 되면서 나의 가족들에게 그리고 나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심리적으로는 우울해지고  늘 긴장을 안고 살았기에 육체적으로도 많이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수치와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늘 조심하였다.

물론 사자와 곰에 놀란 사람처럼 집 밖을 나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었다.


특히 섬기려고 작정하고 들어와 살고 있는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선교사로서 가장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결국 내 인생에 잠깐 동안 일어난 그 일로 인해 나는 모든 삶의 영역을 스스로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서 달려 나온 아름다운 모든 시간들을 회색으로 색칠하고 있었다.

그것이 결국 뱀의 역할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는 오히려 누군가를 도와주어야 하는 어른이 된 시간인 것도 모르고 오직 가슴깊이 숨겨둔 감정들에 집중되어 살아가는 성인어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조용히 혼자 하나님과 마주 하고 앉아 내 안에 남아있는 모든 감정의 잔재들을 하나하나 불러 내었다. 그리고 모든 순간들을 눈물과 함께 하나님께 날려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몸도 마음도 자라나 나를 보호하고 멋지게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나에게 선포하였다.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오히려 그런 순간들 마다 도움의 손길로 이겨 낸 것이 너무 기적이고 감사였다고 하나님께 고백하였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이런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아이들과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내 깊은 아픔 속에 되새기며 기도했다.


내가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을까?


아직도 세상에는 더 아프고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의 아픔에만 퐁당 빠져서 살기는  인생의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나도 모르게 서서히 문을 열고 나오게 되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여전히 약간은 긴장을 하고 있었지만 중동의 그 문화 속에서 씩씩하게 살아냈다.

아직도 문득 그런 두려움이 올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혼자 중얼거린다.


내가 너무 이뻐서 그러는데 뭐 할 수 없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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