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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Jun 18. 2024

가래떡 살리기

이스라엘 국경 에피소드

유난히 어린 시절부터 나는 떡을 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아무것도 넣지 않은 가래떡이나 절편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항상 만날 수 있는 떡이지만, 해외에서는 정말 구하기 어려운 떡이다.

그래도 지금은 밥을 넣으면 가래떡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기계가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해외에 살 때에 한국분들이 집에서 기계로 떡을 만들어 주실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1995년에 이스라엘에 살 때는 물론 그런 기계도 없었지만, 떡을 그리워할 만큼 여유도 없었다.

아이들이 4살, 5살이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안전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과 감사의 시간이었다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외국인들로 구성된 분들과 함께 약 2달간 이집트로 가서 봉사 활동을 해야 했다.

유일한 한국 사람이었던 우리는 열심히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지막으로 한국 식당을 들렀다.


그리웠던 한국 음식을 먹은 후, 그 식당 주인께서 갑자기

"아고 수고 많으십니다. 음식 맛있게 드셨어요? 곧 가시나 봐요? 이스라엘에서는 떡을 구할 수 없지요? 애들 데리고 고생하시네요."라고 하시더니 작은 검은 봉지를 내게 주셨다.

" 어머! 음식이 너무 맛있었어요.. 눈물 날 만큼 잘 먹었어요. 그런데 이건 뭔가요?"


"떡입니다. 가래떡이요"

그분이 말하는 순간 나는 얼른 그 봉투를 열어보았다.  가래떡이 차곡차곡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가지런히 누워 있는 가래떡 !


"작지만 가지고 가서 드셔요. 가래떡을 저희가 파는데 꼭 드리고 싶어서요"

" 와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 떠나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는데... "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리고 그 떡 1킬로만 가지고 가기에는 아쉬워 이스라엘 계신 한국 선교사님들을 위해 조금 더 사기로 했다.

나는 소중한 떡을 잘 챙겨서 앞에 안고 큰 배낭을 짊어지고 국경을 넘는 버스를 탔다.

그 버스는 13시간을 달렸다.

뜨거운 날씨였지만 식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행히 떡을 안고 탔기에 버스 안에서 아이들도 먹이고 나도 맛나게 오물오물 먹으며 배 고프지 않고 행복하게 이스라엘 국경에 잘 도착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국경검문소는 검문이 굉장히 까다로웠다.

그래서 한 사람이 통과할 때마다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에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특히 이집트에서 통과해야 하는 검문소는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그날도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온 우리 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태양아래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다른 팀의 사람들이 먼저 통과하고 우리 짐을 엑스레이 머신에 넣었다.

그 짐이 통과하면 다음 검사 자리로 가야 하는데 갑자기 내 짐이 엑스레이 머신에서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였다.  우리 팀은 모두 통과하여 다른 곳으로 가려고 짐을 챙기는데 내 짐만 문제가 된 것이었다.


여자 경찰은 심각한 표정으로 계속 화면을 보더니 옆에 서 있는 나를 한번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불러서 짐을 풀어보라고 지시했다.


나는 배낭을 활짝 열었다.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한가운데서 짐을 다 풀어헤치는 것도 대단히 수치 스런 일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떡이 들어있는 까만 비닐봉지 두 개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역시 경찰은 그 떡을 가리키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며 작은 칼 같은 쇠꼬챙이로 팍 팍 찌르려고 했다.

나는 급히 그 봉지를 열어서 그 안에 있는 떡을 입에 넣어 우물거리며 말했다.


"This is rice cake, and it's food for my family!"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웠지만 나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급히 먹어 목이 메었지만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 경찰이 더러운 쇠꼬챙이로 휘저어 귀한 떡을 먹지 못하게 될까 봐 급히 떡을 입에 넣었다.


이상한 이 상황에 깜짝 놀란 팀들은 모두 멈춰서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두 아이는 긴장하고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걱정과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남편의 소리가 내 귀에 실시간으로 들렸다.


" 내가 떡 사지 말라니까 굳이 사더니 쯧쯧..."


그 경찰은 까만 봉지를 들고 떡을 손으로 뜯어서 꾸역꾸역 먹고 있는 내가 너무 우스운지 미소를 짓다가 짐을 여기저기 뒤져 보고 다시 짐을 싸서 다음 장소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음부터는 이런 거 들고 다니지 말라고 하며 무기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우리 팀은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국경을 통과했다.

한 번씩 이렇게 검문에 걸리면 긴 시간 다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늘 국경 검문은 조심스러운 순간이었다.


귀한 떡을 만나 너무너무 반가워 나눠 먹으려고 3킬로나 사서 들고 오다가 혼쭐이 났다.

하지만 떡을 압수당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내심 너무 행복했다. 

나는 검사를 통과하고 짐을 들고 나오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엄마가 집에 가서 떡국 만들어 줄게 진짜 맛있어"


아이들도 남편도 마음이 놓였는지 기뻐하며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드디어 소리 높여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엄마, 아까 엄마가 떡을 막 먹을 때 정말 웃겼어!"

" 당신 다음부터 절대 떡 갖고 다니지 마세요 알겠지?"

" 엄마 진짜 그 떡이 그렇게 맛있어?"


" 떡이 맛도 있지만 사실 엄마가 떡을 살리려고 그랬어.
안 그러면 그 경찰이 쇠꼬챙이로 떡을 휘저어서 너희에게 못 먹일까 봐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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