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혜경 Jun 25. 2024

아빠가 있잖아 난 안 무서워!

이스라엘 알렌비 국경 에피소드


이스라엘에서 잠간 살았던 우리 가족은 비자 때문이기도 하고 봉사 활동을 해야 하기에 여러 나라를 많이 옮겨 다녔었다.

부모로서 어린아이들을 잘 보호하고 '안정감' 있게 기르고 싶었지만 선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어디를 가던지 우리 가족 네 명은 항상 똘똘 뭉쳐 다녔다.

 

그리고 매일 저녁마다 손잡고 기도하며 낮동안 있었던 모든 불안감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제어할 수 없는 모든 환경을 소화하고 깊은 정서를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안정제로 치료하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중동의 전체적인 상황이 30년 전에도 여전히 불안정했고 많이 위험했다.

관광비자를 받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나라에서 살도록 허락한 시간에 맞춰서 늘 국경을 넘어 비자를 받아야 했다.


비행기를 타면 쉽게 비자를 받고 들어올 수 있지만 비싼 항공비가 부담이 되었기에 국경 검문이 까다롭다는 육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가는 팀원들 중에는 한국인도 있었지만,  특히 우리처럼 영어로 소통하기 어려워하는 남미와 브라질 분들도 있었다.

더군다나 이번의 여정은 암만을 가야 했기에 국경 검문이 힘들기로 유명한 알렌비 국경검문소를 넘어가야 했다.


그래서 그 경찰들이 영어로 물어보는 질문들을 팀 전체가 모여서 떠나기 전에 연습을 하였다.

여러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문할 때에 우물쭈물하다가 걸려서 긴 시간 조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긴장을 하였다.


이스라엘 쪽 국경 검문소에서는 팔레스타인과의 긴장 관계 때문에 더 예민한 질문들을 한다.

특히 이 두 가지 질문은 정말 잘 대답해야 한다.


" Did you pack your bags?" 그러면 "YES, I pack my bags "

" Do you have a weapon?"  그러면 "NO, I do not have a weapon"


떠나기 전까지 영어 소통이 어려운 한국인들과 남미 그리고 브라질 사람들에게 이 두 가지 질문을 잘 외워 기억하라고 여러 번 연습을 시켰다.


첫 번째 질문에는 " Yes"라고 답하고  두 번째 질문에는 " No"라고 해야 한다고 열심히 강조했다.




알렌비 국경검문소에 점심 즈음 도착했다.

사방이 붉은 흙으로 덮인 광야 한가운데, 공사 중인 듯한 천막과 군데군데 작은 컨테이너들이 있었다.

군인들은 긴 총을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검문소 곳곳을 지키고 있었다.


창 안에 사람이 있는지 조차 보이지 않는 컨테이너의 작은 창구 앞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고, 모두 하얀 종이 위에 무엇을 작성하고 있었다.


우리 팀은 줄을 서서 한참이나 기다렸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한 사람씩 잘 넘어가고 있는데 바로 우리 앞에 서 있던 유난히 영어소통을 힘들어하는 브라질 친구 차례가 되었다.


여자 경찰이 웃으며 물었다.


" Do you have a weapon?"


뒤에 줄 서 있는 모든 팀원들은 긴장하며 숨을 죽여 귀를 기울였다.


"Yes, I pack my bags"


그녀의 입에서 'Yes'가 떨어지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그녀 앞에 서 있던 경찰은 총을 앞으로 다시 고쳐 잡았다.


긴장한 그녀는 겨우 대답을 하고 가만히 경찰을 쳐다보았다.

경찰은 굳은 얼굴로 움직이지 않고 다시 물었다.


" Did you pack your bags?"

" No, I.... "  


그녀는 말을 더듬거리며 긴장하고 무엇인가 잘 못 말했다고 느꼈는지 경찰을 쳐다보며 말을 잊지 못했다.


너무 긴장된 그녀가 우리가 연습한 질문의 내용과 반대로 질문하는 경찰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자신이 기억하는 대로 대답을 한 것이었다.


우리 팀 모두는 아~~~ 하고 두려움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큰일 났다고 느꼈는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고 떨기 시작했다.

그때 까지도 침착하게 총만 만지작 거리며 가만히 있던 여자 경찰이 다시 질문을 하였다.


" Who is your leader? "


그 순간 긴장했던 그녀는 남편을 쳐다보며 이름을 불렀다.


아~~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절망의 깊은 신음을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속으로 '아고야! 주여! 이제 여기서 밤을 보내게 되겠구나 애들은 어떡하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광야에서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조사를 받지?' 수많은 생각에 눈물이 나고 온몸이 다 뜨거워졌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두 아이를 꽉 안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경찰은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팀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데리고 가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팀들의 짐을 하나하나 검사를 하고 붉은색 흙바닥 위에 몰아 두었다.


나는 4살과 5살의 두 아이에게 아빠 엄마가 올 때까지 이모 삼촌들 짐을 잘 보고 있으라고 부탁을 했다.

주위에 경찰들이 있어서 조금 안심이었지만 일단 조사가 들어가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몰라서 마음이 많이 불안하고 속상했다.


그런데 두 아이는 대견하게도

"엄마 잘 지킬게. 엄마 괜찮아?"라고 어린 딸이 오히려 엄마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해 주었다.


옆에서 쳐다보던 경찰들이 살짝 미소로 눈짓을 하며 괜찮다고 자신들이 보고 있겠노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고 마음이 조금 안심이 되어 검문실에 들어갔다.




우리 팀 모두 뜨거운 5시간의 대장정의 조사를 마치고 모두 나왔다.

안전하게 나온 것이 감사하고 견뎌준 모두에게 서로 위로하며 짐을 챙겼다.


한참이나 기다려 제일 늦게 아빠가 나오는데 기다리던 아들이 막 달려가 목을 꽉 껴안고 안겼다.


" 아들! 무서웠지? 이제 아빠 나왔으니까 괜찮아!"


" 아빠 난 안 무서워, 아빠가 있잖아!"


뜨거운 뙤약볕에 빨갛게 익은 두 아이들의 얼굴에 아빠 엄마를 보며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남편과 나는 두 아이를 꼭 안고 한참이나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안으로 먹었다.


온몸으로 광야의 열기를 군인들 사이에서 잘 이겨낸 두 아이들 앞에서 엄마인 내가 운다면 안 될 것 같아서 가슴이 흔들릴 만큼 눈물이 넘쳐 나왔지만 짐을 챙기는 척 돌아서서 얼른 마음을 가라앉혔다.


짐을 잘 지켜보라고 한 아빠 엄마가 부탁한 것지키기 위해 그 땡볕이 내리 쏟아지는 흙 위에 쌓아 놓은 짐 옆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오줌도 지리고 물도 한 모금 못 마시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을 두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이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연약한 아빠 엄마에게

             딸과 아들이 고백한 말은 지금까지 내 가슴에 남아있다.



"아빠가 있잖아 난 안 무서워!"










                     

이전 15화 가래떡 살리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