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혜경 Jul 02. 2024

두리안 이모!

 겉까칠 속따뜻 인간형    

동남아시아에는 많은 과일이 있지만 아주 독특한 과일이 있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나는 두리안을 처음으로 만났다.

도깨비방망이 같은 겉모습이라서 그런지 악마의 과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나 맛이 있으면 과일 중에 가장 맛이 있어서 과일의 왕이라고 도 한단다.


첫인상은 그야말로 도깨비방망이 같았다.

잘 못 건드리면 부드러운 손을 찔러 아프기까지 했다.

친구가 싱가포르에 오면 꼭 이 과일을 먹어야 한다고 굳이 저녁을 먹고 더운 길거리 늘어놓은 두리안 가게에 데리고 갔다. 두리안 철이 되면 저녁나절에 많은 분들이 길거리 의자에 앉아 두리안을 먹는다.

우리도 그 곁에 작은 파라솔이 있는 길가의 테이블에 앉았다.


상점 주인이 거친 칼로 뾰족이 나온 한 구석을 과감하게 내리 치니 쫘 악 갈라졌다.

주인아저씨는 쫘악 갈라지는 것은 잘 익은 것이라고 신나 하면서 중국어와 영어가 잘 어울려 소통되고 있는 싱글리쉬( 싱가포르 영어) 발음으로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하신다.


처음에는 과일 냄새가 조금 이상해서 가까이 가지 않았지만 비싼 두리안을 사주는 말레이시아 친구의 정성에 감사한 마음에 주인아저씨가 잘 까서 준 두리안을 먹기 시작했다.


와우! 정말 부드럽고 달콤하고 약간 싸한 맛이 오히려 더 두리안을 달달하게 만들었다.


그 맛이 꼭 화장실에 앉아서 먹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맛이었다.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같은 두리안

갑자기 눈이 열린 것처럼 열정적으로 먹는 나를 보는 친구는 재미있다는 듯이 자신이 남긴 두리안도 내게 건네며 처음부터 이렇게 잘 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너무 좋아했다.


두리안을 한입 가득 넣고 우물거리며 우리 두 사람은 정말 첫인상대로 무엇이든지 판단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며 웃었다.

첫 모습은 울퉁불퉁 무섭지만 그 속에 이렇게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여리고 크림처럼 부드럽고 달달 하게 맛이 있는 과일일 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인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에는 두리안뿐만이 아닌 것 같다.


사실 이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이 바로 내가 지금 두리안을 만났을 때랑 비슷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훈련을 같이 받는 멤버였다.


늘 그녀는 똑똑했고, 무엇인지 자신의 의견을 늘 정확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떤 상황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대로 올바른 말을 하는 친구였다.

당시 영어를 못하는 아시아 사람들도 훈련에 참여했는데,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에 눌려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해 가끔 억울한 경우가 많았었다.


그 당시 나는 2살 된 딸을 데리고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날도 점심시간이 되어 딸과 같이 먹으려고 한 접시에 뷔페 식으로 담는데 나는 밥을 조금 많이 펐다.

그리고 딸을 먹이고 내가 먹고 하다 보니 싱가포르의 더위에 나도 지쳐서 입맛이 떨어져서 그런지 밥을 조금 남겼다.

그것을 보던 이 친구가 내게 이렇게 밥을 많이 남기면 어떡하냐고 하면서 처음부터 조금 밥을 푸라고 그 당시 영어가 서툴러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조밀조밀 가르쳐 주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서 나는 너무 속상했었다.


'누가 몰라서 그러나요? 나도 알아요 그렇지만 지금 내 몸이 너무 힘들어 먹을 수 없는데 어떡합니까'라고

영어로 조밀조밀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포기했다. 그 말을 다 영어로 해야 하니까 더 부담이 되었다.

그렇게 그 친구와 나는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약간의 불편 함을 가지고 몇 개월을 지냈다.


그녀는 친절한 듯 하지만 누군가 상식에 어긋한 행동을 할 때는 어김없이 어디선가 나타나서 바른말을 하곤 하였다. 동료들도 약간 그녀를 조심하는 눈치였다. 물론 나도 항상 그녀의 눈에 걸릴까 봐 조심했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아무래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그저 예스만 하고 있는 나의 속마음을 알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굳이 그날 저녁 나에게 자기가 맛난 두리안이라는 과일을 사주겠노라고 나를 만나자고 요청했다.


나는 워낙 까다로운 친구이기에 마음이 기쁘지 않았지만 또 내가 거절하면 왜 그러냐고 자꾸 물을 것 같아서 그냥 예스 예스를 하면서 따라 나와서 아직은 제철이 아니라 조금 비싼 두리안을 이렇게 처음으로 먹어보게 되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는 이 두리안을 먹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다 털어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두리안 같은 친구였다.

조금은 까칠하고 무섭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 그리고 너무 여린 사람이었다.

내게는 조금은 가까이하기 쉽지 않았던 이 친구의 따스한 마음을 알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고 처음으로 도깨비방망이 같은 비싼 두리안을 맘껏 먹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 친구와 다시 친하게 되어 재미있게 지내고 그 친구는 다시 말레이시아로 돌아갔다.

까끔 두리안을 볼 때마다 두리안 같은 친구가 생각났다. 그리고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 친구도 우리 가족이 그리웠는지 두리안 철이 되면 말레이시아에서부터 굳이 우리를 방문해 주었다. 그것도 늘 두리안을 가지고 왔었다. 말레이시아 두리안이 싱가포르를 두리안 보다 더 맛있다고 하면서...


겉은 까칠하고 속이 따뜻한 두리안 이모가 오는 날에는
우리 가족이 원도 한도 없이 두리안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그녀는 멋진 검은색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토바이 뒷자리에는 부댓자루 가득 두리안을 싣고 왔다.

Car Park 두리안 파티!

그리고 넓은 주차장에 우리는 자리를 쫘악 펼쳐놓고 두리안 파티를 연다.

그리고 늦은 밤인데도 모두 둘러앉아 맘껏 두리안을 열심히 먹었다.

말레이시아의 싼 두리안을 발견하였다고 신나게 싱글리쉬 영어로 말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열심히 먹었다.

어차피 잘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그저 우리는 웃음으로 그리고 손짓으로 소통하였다.

사람은 말로 소통하는 것보다 서로 사랑하고 관심 가득한 마음의 소통이 중요한 것 같다.


마음이 무척이나 따뜻하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에 아낌없이 에너지를 쓰는 친구!

그 먼 말레이시아에서 이렇게 남편까지 대동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자주 찾아와 주는 친구!

우리 가족의 멋진 친구, 두리안 이모!








이전 16화 아빠가 있잖아 난 안 무서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