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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May 07. 2024

랍스터 한 양동이

남편과 아내의 소통

화창한 봄날 아내는 오랜만에  진공청소기를 대동해 혹시나 들어왔을 꽃가루를 남김없이 빨아들인다.


결혼할 때 친정아버지가 비싸게 사주셔서 지금까지 비비며 살아온 가죽 소파를 왁스로 닦아 내며 틀어놓은 TV에서 나오는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른다.


소파는 서로 대화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TV를 편하게 보기 위한 자리인 것처럼 항상 소파 앞에 떡하니 큰 TV 가 마주 보고 있다.


얼마 전 남편이 눈이 시리고 침침해지는 아내를 위해  장만한 큰 TV 화면에 눈이 시원하다.


아내는 커피 한 잔을 들고 TV를 보는데, 드라마에서 멋지게 양복을 입은 남자가 사랑하는 애인에게 음악이 흐르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꽉 찼다.

그러더니 갑자기 화면에 접시 위 엄청 큰 랍스터와 구운 야채들이 클로즈 업되었다.


"아구야!  맛있겠네.. 참말로 세상 참 좋다. 젊어서 저렇게 좋은 곳에서 데이트도 하고  음식도 장난이 아니네!  어쩜 저렇게 랍스터를 요리하는지.. 보기에도 대단하네"


요즘 세상이 너무 좋아졌다고 그리고 우리가 연애할 때는 저런 곳도 없었는데 라며 미소를 지으며 계속 아내는 중얼거렸다.


남편은 소파에 앉아 랍스터가 떡하니 드러누워 있는 접시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는 두 연인의 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이는 아내를 보고 묻는다


"여보 랍스터 먹고 싶어?"


"응 너무 맛있어 보이네, 밥은?"


"안 먹었지 근데 잠깐 기다려 친구에게 다녀올게"


"밥 먹을 시간 되었는데 어딜 가요?"


아내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남편은 이미 나가버렸다.


아내는 투털거리며 부엌으로 가서 밥상을 차릴 준비를 한다.


한참이나 있다가 남편이 큰 소리를 지르며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여보 내가 랍스터를 엄청 사 왔어, 친구가 소개해서 싸게 사 왔어. 그런데 그 친구도 올 거야 우리 이거 쪄 먹자. 당신이 방금 전에 랍스터 먹고 싶어 했잖아. 그래서 내가 사 온 거야"


파란색 플라스틱 양동이 안에
양손을 세우고 있는 랍스터들이 고개를 내민다.


몇 마리인지 모르겠지만 양동이 안에 가득하다.


곧 남편의 친구가 도착하고 아내는 랍스터를 잘 씻고 장만해서 큰  찜통에 넣어 찌기 시작했다.


"아고  양반은 이렇게 일을 만든다니까.. 내가 언제 랍스터를 이렇게 먹고 싶어 했나 그런 분위기에서 로맨틱하게 먹고 싶은 거지 이렇게 양동이 가득 갖고 와서 일 시키고 게다가 왜 나랑 먹으면 되지 친구까지 부르냐고. 쯧쯧.. 내가 이양반에게 뭘 기대하나? 아니 나한테 물어보지 내가 뭘 원하는지... 뭘 기대해 늘 자기 맘대로 하는 걸... 그리고 비싼 랍스터를 왜 이렇게 많이 샀어 그래, 씻기도 귀찮아 죽겠네  증말..."


워낙 일손이 빠른 아내는 울퉁불퉁한 말을 하면서도 금방 랍스터를 요리하고 한상 가득 맛나게 밥상을 차렸다.


아내의 마음도 모르는 남편은 신이 나서 어떻게 랍스터를 싸게 잘 구했는지 열심히 친구와 마루에 앉아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비싼 랍스터를 한 양동이나 구해 온 남편의 아내를 향한 사랑은 대단하다.

서로 말하고 물어보지 않고 질러버린 남편에 대해 화는 났지만 어쩌면 그 마음을 아내도 아는듯하다.


그 드라마 속의 한 장면처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음악을 들으며 소곤소곤 대화하며 큰 접시 위에 한 마리 덜렁 누워 있는 랍스터 요리를 먹고 싶었지만, 조금은 촌스럽기도 하고 점심도 안 먹고 굳이 그 오후에 나가서 한 양동이 가득 랍스터를 구해 달려온 남편의 사랑의 소통을 아내는 너무 잘 이해하고 있었다.


지지고 볶으며 한 세월 살아낸 남편과 아내의 사랑의 소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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